[유재천 칼럼]과학분야 노벨상 받으려면
지난 10월 7일과 8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모두 6명 가운데 3명이 일본 과학자였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일본을 부러워하면서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우리는 언제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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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어떠할까. 각종 통계를 통해 살펴보자. 2006년도 연구·개발비에 쓰인 돈은 절대금액으로 아직 미국, 일본, 독일 등 전통적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23%로 일본의 3.33%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미국(2.62%)이나 독일(2.51%)보다는 높은 수준으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5위에 속한다. 과학기술계 연구원 수는 미국, 일본, 독일에는 뒤지지만 캐나다와 이탈리아는 이미 추월하여 세계 10위권 이내다.
한편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논문 가운데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에 등재된 논문 수는 세계 1위인 미국, 영국(2위), 독일(3위), 일본(4위) 등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호주(10위), 인도(11위), 네덜란드(12위) 등에는 상당히 근접한 세계 13위로 2006년에 모두 2만3286편이 발표되었다. 그렇지만 발표된 논문의 질을 나타내는 피인용도(발표 논문이 다른 논문에서 인용되는 횟수)는 세계 30위 정도여서 아직은 양적인 발전과 격차가 큰 것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상의 통계수치 등을 보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총체적으로 세계 10위에서 15위권에 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로 보인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2007년 과학경쟁력 세계 7위, 기술경쟁력 세계 6위로 매겨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과학기술은 지난 40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그래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인 물리학자 오세정 교수는 지난 10월 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굿 소사이어티’ 주최 토론회에서 한국 과학기술 역량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아직도 질적 수준이 정량적인 평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서울대 자연과학대와 공과대학이 해외 석학들을 초빙해 학부(과)별 평가를 받은 결과를 소개했다. 해외 평가단은 공통으로 서울대가 대부분의 이공계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대학(world class university)은 달성하였으나, 세계 학계를 이끄는 초일류 대학(world-leading university)은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학계의 최근 연구 동향을 잘 따르고는 있지만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거나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주제를 발굴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모르긴 하지만 이 같은 진단이 오늘의 한국 과학기술 수준을 가늠해 주는 것이 아닐지 싶다.
이러한 현황 진단과 함께 오세정 교수는 한국과학기술계의 과제로 새로운 도전과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방향 제시에 크게 공감했다. “연구·개발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문제가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 여건에 맞는 해답을 찾는 것이 목표인 시대가 아니라, 해답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문제를 우리 스스로 제시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대가 되었다” 는 것이다. 과거에는 해답이 있는 문제만 풀었지만 이제부터는 정답이 없는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는 말 속에 앞으로 한국과학기술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의 싹이 보이는 것 같았다.
200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시라카와 히데키는 “일본에 창조성과 독창성이 있는 인재가 없어서 노벨상 수상자가 적은 것이 아니라, 그런 인재를 교육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답 없는 문제 풀기는 돈보다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논술 때문에 소설 읽기마저 정답을 만드는 교육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언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