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인섭 태평양 명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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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임감의 연장선에서 그는 法古創新의 자세로 19세기와 20세기를 냉철하게 성찰하면서 21세기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동시에 20세기 후반을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과 지혜를 후세들에게 전수해줄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에 뜻을 같이 하는 법조인 등 22명을 모아 2004년3월 '포럼 19-21'의 창립(올해 3월 '재단법인 굿 소사이어티'로 개명)과 활동을 4년째 주도하고 있다.
"로펌 무리한 대형화경쟁보다 전문화·특성화가 바람직"
"국내 로펌들이 대형화에만 치중해 무리하게 규모의 경쟁에 몰입하는 것은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부담과 문제를 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해 드리고 싶습니다"
김인섭(72·고시14회)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변호사는 최근 국내 로펌들간 합병이 러시를 이루는 등 로펌업계의 대형화 바람에 강한 질책을 하고 나섰다. "오히려 무리한 규모의 경쟁을 하는 것 보다는 몇 개 분야만을 전문화·특징화한 로펌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고 충고했다.
나아가 김 명예대표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존속발전을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인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법조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사회에 법치주의가 확고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질서파괴자 등 불법행위자들을 끝가지 추적해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민사책임까지도 지우는 등 불법행위를 엄단하는 관행을 세워야 한다고 밝히는 등 법조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 등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시간30여분간 내내 웅변하듯 제스처와 강한 톤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 만큼 법조계와 우리 사회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많았다.
-한국 로펌의 1세대 창업세대로서 앞으로 국내 로펌의 발전방향과 충고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현대사회가 고도경제사회, 전문화사회, 국제사회로 변화해감에 따라 로펌 변호사의 역할과 기능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변호사의 모든 업무가 다 대형로펌의 업무로만 적합하고 군소로펌이 담당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규모가 작더라도 전문화만 잘 되어 있으면 그 분야의 법률서비스 경쟁에 있어 유리한 점이 있다. 대형로펌이 생산성이나 효율성에 있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돈이 투자돼야 한다. 하지만 일단 대형로펌으로 성장한 후에도 부단히 매니지먼트의 합리화와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구성원간의 이해조절 및 다양한 의견의 종합, 조화를 계속해 나가야 하므로 성공적인 유지운영을 위한 유무형의 부담이 상당히 크다. 따라서 무리한 규모의 경쟁을 하는 것 보다는 몇 개 분야만을 전문화·특징화한 로펌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고 권하고 싶다. 더구나 로펌은 규모가 커지면 조직이 관료화되기 쉽고 또 많은 예산이 소요되므로 비즈니스화되기 쉽다. 로펌의 규모가 아무리 커지고 전문화·국제화·관리의 합리화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치집단이고 이익집단이 아니므로 가치집단으로서의 변호사의 정도를 벗어나는 활동을 하는 것은 안 된다. 예컨대 너무 영리적으로 비즈니스화 되거나 또 너무 당대의 정치세력과 유착을 하여 정치권력을 즐기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다"
-태평양은 3대 핵심가치인 인재경영·가치경영·선진제도경영을 창립초기부터 견지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중 가치경영이란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요.
"법조인은 특정 개인의 이익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아니다. 사회전체의 존속발전을 위해 보존하고 추구해야 될 가치 즉 법치주의의 정착을 직업으로 하면서 살아가라고 국가가 만들어 준 전문적 직업인이다. 따라서 법조인은 원천적으로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고 기능하는 직업인으로서, 대표적인 가치집단이다. 인류사회가 진화하고 발전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수만 개의 직업인들은 각기 자기들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고 기능하는 다양한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의견대립과 이해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어있다. 이런 갈등은 공정하게 조정해준다면 오히려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이끌어내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법은 바로 이러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공정하게 조정해주는 틀이며 바로 이러한 틀(법)을 유권적으로 엄정하게 해석·적용하는 법조인의 역할이다. 최근 일부 법조인들이 현실적으로 타락하여 가치집단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탈선행위를 하는 것은 제도상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상의 문제이다. 때문에 법조인이 그렇게하면 안된다고 나무라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부 언론이 법조계 전체를 이익집단으로 몰아 '밥그릇 싸움을 하느니' '직역이기주의니' 하는 것은 근본을 혼동하는 무책임한 행위다. 가치경영을 조직화된 법률가 집단인 로펌이 핵심가치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법률가의 기본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태평양의 창립자로서 5년 전 한창 일할 때에 모든 경영권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물러났는데 서둘러 세대교체를 한 이유 등에 대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둘러 은퇴한 것이 아니다. 나는 창립당시부터 만 65세를 정년으로 이미 정해놓고 있었다. 다만 내가 은퇴할 때 후배들이 종신명예대표변호사의 신분을 나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명예타이틀이다.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은퇴하였기 때문에 구성원 변호사명단에서도 삭제되어 있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시대에 중심을 두고 로펌을 시작하거나 운영한 것이 아니고 항상 차세대와 차차 세대를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생각하고 운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장 우선순위의 과제는 나 없이도 로펌이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고 굴러 갈 수 있도록 기초를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수하면서도 법률가로서 가치관을 같이 하는 후배들만을 찾아서 영입하였고, 모두가 주인이며 연대책임자라는 자부심을 부어 넣어주면서 로펌운영의 민주화를 체득하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로펌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는 설립당시부터 나의 소망인 동시에 우리 로펌의 영원한 발전을 향한 첫 단계의 관문이었던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된 대로 꾸준히 준비를 해온 것을 그대로 실행한 것 뿐이다.
-현직에서 활동하실 때에 비해 법조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현 법조계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법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충고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법조인의 사회적 역할은 실정법의 엄정한 해석, 적용을 통해 사회의 기존 질서와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이나 가치를 창조하는 역할이 아니므로 법조인의 업무성격이나 가치관은 소극적이고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법조인들이 감당해야할 이러한 가치집단으로서의 본질적 속성과 사명은 시대나 이념을 초월한 만고불변의 진리이므로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했다고 하여 이러한 본질적인 속성이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과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치가 민주화 되고,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고 사회는 전문화·다원화·국제화되면서 사회의 기본적인 인프라로서의 법치주의의 가치와 법률가의 역할은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법조인은 사회의 발전과 변천이 요구하는 법과 법치주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시켜야 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실정법의 연역해석론은 물론 비교법학적인 안목까지 부단히 연마해야 한다. 나아가 주변학문에 관한 폭 넓은 교양도 갖춰야만 고도의 종합적인 판단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치판단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명예대표는 법률가를 천직으로 알고 일생동안 줄곧 외길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세대에 경제발전과 정치의 민주화는 상당히 이루어졌음에도 법치주의는 아직 정착되지 못해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감을 떨칠 수가 없다고 했다.
윤상원 기자 news8@law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