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는 성경의 내용 중에서 의문스러운 것이 많았는데 누가복음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가 그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어느 부유한 주인이 세 명의 종을 불러 각기 10달란트·5달란트·1달란트를 맡기고 오랜 여행을 떠난다. 주인이 없는 동안 10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열심히 불려서 두 배를 만들었고 5달란트를 받은 종도 열심히 불려서 두 배로 만들었는데 1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파묻어 두었다고 한다.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 맡긴 돈을 어떻게 했는가고 물어서 돈을 두 배로 불린 종들에게는 상을 주고 돈을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돌려준 종에게는 벌을 주었다는 비유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삭빠르게 장사를 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라고 가르치신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유교적인 청빈사상의 분위기에서 자라기도 했고 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가르치신 예수님이 왜 재산 증식을 권장하는 것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어른이 된 후에 어느 날 홀연히 그 비유의 뜻을 깨닫게 됐다. 혼자 생각해 낸 것이라서 기독교 교회의 정통적인 해석과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비유에서 주인이 종에게 맡긴 것은 돈이 아니고 재능 또는 능력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유대국의 화폐 단위인 ‘달란트’와 영어에서 ‘재능’을 뜻하는 탤런트(talent)의 어원이 같은지는 모르지만 예수가 강조하셨던 것은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재능과 능력을 사장(死藏)해서는 안 되고 잘 연마해서 세상을 위해 유용한 재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영어로 재능은 기프트(gift)라고도 하는데, 즉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 언니들은 다방면에 재주가 뛰어나 학교의 총아, 집안의 자랑거리였는데 나만은 유독 아무것에도 소질이 없었다.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지만 독서는 취미일 뿐 ‘재주’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늘 재주 없는 아이였다. 그래도 학과목 성적이 괜찮았고 착하다는 칭찬도 많이 들어서 유년 시절에는 인생이 괴롭지 않았는데 사춘기가 돼서 나는 장래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무엇으로 나의 존재 가치의 근거를 삼을까, 나는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괴롭게 느껴졌다.
대학에 들어가서 ‘문학’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나에게 구원 바로 그것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것을 ‘재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전적으로 가치를 느끼고 일생 탐구하고 싶은 대상을 발견한 것은 절대적인 축복이었다. 결국 나는 문학에 정진함으로써 생계도 해결할 수 있었고, 미미한 정도로나마 사회 안에서의 역할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모두 재주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거나 운동에 소질이 있거나 손을 몇 번 놀려 그림을 멋지게 그려 내거나 하는 사람을 보면 새삼스럽게 왜 나는 저런 재주를 타고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인다. 그러나 ‘재능’만이 하나님의 선물은 아니다. 우리가 깊은 흥미를 느껴 일생 그것을 연마하고 탐구하고 싶은 대상을 갖게 된다면 그것도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해 줄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꾸준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정진함으로써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존재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로서 25세 때 영국 왕실음악학원의 교수가 된 쉐 웨이(薛偉)는 자기에게 음악은 신앙이고 무대에 설 때마다 자신은 음악의 신도이고 충실한 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치 있는 대상에 정진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 또한 크나큰 재능이고 자본이며 신의 축복임을 제대로 인식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