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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관한 자유, 도덕, 용기
서지문   |  2005-10-14 13:06:58  |  조회 2275 인쇄하기
내가 처음 1978년도에 고려대학교에 부임했을 때 문과대학의 교수 휴게실은 언제나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강의실로 말할 것 같으면 먼지 냄새와 담배 냄새로 찌든 공기 때문에 숨쉬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때는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이 나와 눈이 마주치면 황망히 담배를 등 뒤로 감추며 송구스러운 표정을 짓는 일이 많았다.

가끔은 창턱에 올라앉아 유유히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다가 교수가 지나가면 ‘멱살이라도 잡아 끌어내릴 테냐’하는 도전적인 눈길을 던지는 학생도 있었다. 그때는 흡연을 남성의 특권 (!) 으로 여겨 교정에서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다가 “건방지다”며 남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까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0년도 가지 않아 교수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교수가 사라졌다. 어쩌다 원로 교수가 ‘오래 살겠다고 담배도 끊는 소심파’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담배를 붙여 물었다가도 모두들 민망스러워하는 분위기 때문에 반도 못 태우고 눌러 끌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술·담배도 못하는 꽁생원한테 딸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장인 후보가 많았지만 이제는 “담배를 끊어야 사위 삼겠다”는 아버지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 변화는 이처럼 놀라운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 20년 일찍 죽고 말지 뭐”라 하든가 “폐암에 걸리더라도 내가 걸리는데 웬 잔소리들이냐”라며 큰소리치는 강심장(?)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흡연 습관을 남자다운 것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흡연자들은 의지력 부족으로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젊었을 시절에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답답해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초조함을 삭이며 영감을 불러들일 수 있는 남성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담배 연기를 싫어해서 나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는 못했지만 담배를 피우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담배가 폐암이나 혈관 경화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뇌의 혈류도 방해한다니 담배는 글 쓰는 사람의 벗이 아니라 적(敵)이 아니겠는가.

몇 해 전 TV에서 ‘개선문’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주인공이 나치에게 잡혀 가서 온갖 고문과 협박에 시달리다가 마지막에 국경을 넘는 트럭을 얻어 타고 탈출하게 되는데, 트럭에 올라서 담배를 붙여 문다. 그런데 그 몸서리치는 상황에서 놓여나 붙여 무는 담배가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전에 사람들이 가득 탄 덮개 씌운 트럭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에 대해 ‘아니, 저렇게 무식할 수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 어떤 남성이, 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들이 흡연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하도 설교해서 반발로 담배를 피우게 됐다면서 건강에 나쁘다고 했으면 안 피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아무개 씨는 자기 건강에 나쁜 일은 안 해도 도덕적으로 나쁜 일은 일부러라도 하는 사람이냐고 반문했는데, 물론 그의 뜻은 고교 시절 교사들의 설교가 너무 진부해서 어긋나가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흡연이 자기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간접 흡연의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정말 흡연이 비도덕적인 일이 되었다.

자유 국가에서 ‘내 몸 내가 망칠’ 권리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내 몸을 망치면 그 피해나 손실이 오로지 나에게만 국한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게다가 흡연율이 낮을수록 온 국민의 생활환경이 건강해지고 선진 사회로 갈 수 있다는데 나는 기어코 나의 흡연권을 고수해야 할까. 내 현재의 가족, 미래의 가족, 우리나라와 나 자신을 위해 나의 프라이드를 걸고 담배를 끊어 볼 만하지 않은가.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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