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은 최초의 인류로부터 유전돼 온 당연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량을 구하기가 어렵고 위험했던 시절에 혈족끼리는 사냥감을 함께 쫓아서 잡으면 분배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내 먹이를 빼앗기 위해 나를 해치거나 죽일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집단은 혈연으로 얽힌 씨족 집단이었다. 씨족 집단이 커졌을 때 먹이 획득과 자연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커졌고 씨족 사회의 관습과 규율이 생겨났다. 그러나 씨족 집단은 타 씨족 집단과 계속 투쟁해야 했고, 이 투쟁은 씨족의 멸망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생존 방법이 타 씨족과의 연대였다. 호전성과 적개심의 표현이었던 약탈혼을 타 씨족과의 연대 수단인 족외혼으로 발전시킨 것은 인류 발달사의 큰 전기였다.
씨족들 간의 연대로 부족 국가가 탄생하게 됐고 풍부한 인적 자원을 보유한 부족 국가는 기술을 개발해서 생활 수준을 높이고, 이에서 ‘문명’이 발생하게 된다. 즉, 인류는 점점 더 많은 타인, 타인의 집단을 이익 공동체로 만드는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오늘날 앞서 가는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국민들이 일찍이 모르는 사람들과 공존의 지혜를 터득했던 나라들이다. 다시 말하면 혈연과 지연 이기주의의 극복과 시민정신의 발달이 빠른 나라가 선진국이 됐다는 말이다.
유럽의 사회·경제적 요건이 시민 사회로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했지만 시민정신의 발달은 공동체의 강화를 통한 나의 삶의 안정과 향상이라는 긴 안목의 지혜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삶의 패턴이 가족과 가문 이기주의를 조장했고 생존과 성공을 국가라는 큰 공동체의 발전에 의존하기보다 혈연과 지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패거리 문화의 뿌리가 깊다.
그러나 ‘개화’가 시작된 지 100년이 넘었고 민주공화국이 된 지도 거의 60년이 되는데 아직도 내 가족, 아는 사람만 챙기면 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나 배려조차 베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말하자면 서양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잠재적 협력자라는 것이 무의식화되고 유전자에 각인됐다고 할 수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모르는 사람은 잠재적 적이라는 무의식적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생존경쟁이 서양에서 더 가혹하지만 동양에서의 생존 경쟁이 더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도 될 것 같다.
모르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를 베푸는 것이 그다지도 힘들고 손해 보는 일일까.
무거운 회전문을 열고 나가면서 바로 뒤에 사람이 와도 그냥 세게 퉁기도록 놓고 가서 뒷사람에게 부딪치게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문을 열지 못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빤히 보고도 자기만 나가 버리는 사람은 입장이 바뀌었을 때 아무 불만이 없을까.
고속버스나 기차 안에서 긴 여정 내내 마음껏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사람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가혹 행위라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조용히 해 달라는 호소를 들어도 묵살하고 계속 떠드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때로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동료 인간에게 큰 덕을 베풀 수 있다.
선진 국민, 그는 바로 자기의 진정한 이익이 질서 있고 기분 좋은 사회의 건설에 있다는 것을 아는 긴 안목의 실속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