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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만 해도 TV에서 중국에 관한 뉴스를 보도할 때마다 넓은 거리를 가득히 메우고 질서 정연하고 경쾌하게 질주하는 자전거의 행렬을 화면에 비추어 주곤 했다. 그때 이미 한국에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출근길 시민을 괴롭힐 때여서 중국 시민들의 출근길은 물결과도 같은 자전거 대열에 들어가서 파도타기를 하는 기분이 아닐까, 하고 부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
2004년 내가 본 베이징(北京)의 거리는 곳곳이 아수라장이다. 온갖 종류의 차들이 뒤엉켜 서로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경적을 마구 울려대고 (중국 차의 경적은 날카롭고 요란해 바로 옆에서 울리면 귀가 찢어질 것 같이 느껴진다) 난폭하게 밀고 들어오고, 운전수는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한다. 자동차와 버스·트럭들이 위험천만하게 뒤엉켜 있는데 그 사이를 자전거들이 누비고 다니니, 자전거들이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사람들 또한 차들과 자전거들이 얽혀 있는 틈새로 길을 건너고 도보한다. 그래서 베이징에서는 거리에 나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모험이고 법과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내가 1980년대 후반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있을 때 중국인 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 중국인 학자에게 자전거가 다 비슷비슷한데 중국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리는 일이 흔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그때 그 젊은 여성학자는 중국에서는 자전거를 도난당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 후인 요즈음 중국에서는 자전거 도난 사건이 일상사이고 자전거를 도난 안 당해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물론 15년 전에는 오늘보다 자전거가 중국인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고 구입하기 어려운 재산 목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들에게 남의 소유를 존중하고 나의 욕망을 절제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덕적인 자제와 법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제는 개혁·개방과 함께 운 좋고 수완 좋아서 한밑천 잡은 친구들에 대한 선망과 함께 일종의 반감이 있어 남의 소유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엷어지고 질투와 탐욕을 억제할 수 있는 정신적 기강도 해이해진 모양이다. 동시에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행정력이 일반 절도 행위 단속에까지 미치지 못해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에 잠시 체류해 보면 중국 사람들은 아직 몹시 거칠고 투박하고 기질이 강한데 한편 관(官)의 힘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쉽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몹시 인정스럽고 소박하고 마음이 넓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10년 전, 어떤 면에서는 20년 전, 어떤 면에서는 30년 전의 사정과 똑같다. 우리나라에서 관의 횡포가 줄어들고 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줄서기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사람들은 세련돼졌고, 그와 비례해 투박하고 소박한 인정은 사라졌다. 경제 성장으로 생활수준·의식수준이 향상하면서 작은 비리와 불합리는 시정돼 가지만 욕망은 고조돼 대형 비리가 겁 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중국은 지금 급변하는 전환기여서 생활수준도 지역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고 문화수준도 편차가 크다. 베이징에서는 길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이 생각했던 것처럼 많지는 않았다(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후에 연탄 사용이 금지돼 공기가 그나마 조금 깨끗해지기도 했고). 중국인들도 이제 ‘문화 국민’이 돼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됐나 보다. 길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이 드물게 되고 경제 성장으로 자전거 도둑이 자동차 도둑이 될 무렵이 되면 중국 사람의 투박하고 소박한 인정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공중도덕과 질서를 지키는 ‘세련된’ 현대인이 되면서도 후덕하고 소박한 인심을 잃지 않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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