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미국인과 영어를 겨룬다면?
서지문   |  2005-10-14 13:08:15  |  조회 2193 인쇄하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리 영어를 제대로 배워도 원어민보다 영어를 잘할 수 없다는 철저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노련한 영문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나서 다시 아무 원어민에게나 물어서 확인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나라 말이든지 외국인이 배워서 통달하기는 지극히 힘든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서 가끔 한국어 단어의 미묘한 차이나 용법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기는 정말 힘들겠구나 싶고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극소수이기는 해도 한국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선교사나 학자도 있다.

영어에서는 전치사와 관사가 제일 큰 난관인데 단어의 뜻은 공부하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지만 전치사를 활용한 무궁무진한 숙어는 그것을 구성하는 단어의 뜻을 모두 알아도 정확히 뜻을 짚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하나하나 따로 터득해야만 되니까 외국인으로서는 괴롭기 그지없다. 관사 역시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직감으로 구사해야 하는데 외국인에게는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외국인도 노력하면 원어민보다 훨씬 고차적인 영어 구사가 가능하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1학년 학생들의 영어 작문을 가르친 일이 있는데 미국 대학생들의 영어 실력·작문 실력은 참으로 한심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한글 작문 실력보다 조금도 낫지 않았다. 미국의 각급 학교에서 가장 골치를 앓는 문제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서 제대로 된 문장을 구성토록 훈련시키느냐다.

원어민의 일반적인 영어 구사 수준이 낮은 것을 기뻐할 필요는 없지만 원어민에게도 어려운 영어를 외국인은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고 미리 절망할 필요는 없다.

조지프 콘래드라는 폴란드 태생의 영국 작가는 20세가 넘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의 작품은 지극히 유식한 어휘, 장중한 운율, 그리고 심오한 내용으로 웬만한 영국 태생의 작가들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다시 박사 과정의 유학을 가기 전 어느 대학에서 잠시 영자 신문 주간을 맡았다. 그때는 1970년대 초여서 미국인이 귀했기 때문에 미군에서 복무하다 제대해 그냥 한국에 정착한 교육 수준이 좀 낮은 외국인이 영자 신문의 영어 자문 교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 기자들이 써 온 글을 일단 고쳐 그 사람은 전치사나 관사 정도를 점검하도록 맡겼고,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stationary’라고 쓴 것을 그가 ‘stationery’라고 고쳐 놓았다. 그래서 내가 그 경우에는 ‘stationary’가 맞다고 했지만 그는 ‘stationery’가 맞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stationery’는 문구류(文具類)를 가리키는 것이고 ‘고정적인’이라는 의미의 단어는 ‘stationary’라고 가르쳐 주고 영영사전을 찾아서 보였더니 그제서야 승복했다.

30전에 있었던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일전에 그때의 학생 기자들을 정말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당시의 편집장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자신은 한국인도 공부를 많이 하면 원어민보다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흥분되고 기뻤다고 회상했다.

학문적 배경이 없는 그 미국인보다 나의 영어 어휘가 더 풍부한 것은 전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자그만 사건으로 인해 그곳에 있던 학생들의 자신감과 의욕이 고양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우리 장병들도 넘지 못할 산은 없다는 생각으로 어학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진지하게 도전해 토박이를 능가하는 개가를 올리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112 우선, 만나자  서지문 05-10-14 2125
111 우리 軍을 신사집단으로 만들자  서지문 05-10-14 2118
110 ‘영혼의 꽃’  서지문 05-10-14 2076
109 영웅숭배  서지문 05-10-14 2146
108 어머니  서지문 05-10-14 2062
107 세월의 연금술  서지문 05-10-14 2267
106 미녀의 탄식  서지문 05-10-14 2125
105 미국인과 영어를 겨룬다면?  서지문 05-10-14 2193
104 문화 국민이 되려면  서지문 05-10-14 2157
103 모르는 사람에 대한 예의  서지문 05-10-14 2135
71727374757677787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