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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같이 훈련받고 있는 동기생들을 군대를 마치면 다시는 안 볼거라는 ‘계산’ 하에 아무렇게나 대하고 있는 장병은 없는지? 또는 훈련시키고 있는 장병들을 제대하면 다시 마주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배려에 인색한 상사들은 없는지?
지난주에 중·고등학교 동창생들과 함께 졸업 40주년 기념 여행을 갔다. 우리 기(期) 졸업생은 약 400명 되는데 이번 여행에는 69명이 참가했다. 동기회 모임은 매년 한두 번씩 있었지만 강의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이 빠졌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처음 만나는 동기도 여러 명 됐다.
놀랍게도 참석한 사람 중에서 중·고등학교 6년을 통틀어 한 번도 한 반을 해 보지 않은 친구도 3분의 1 가량 됐다. 그러나 한 반을 했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던 친구들은 얼굴을 보는 순간 한두 가지씩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른 친구들이 기억하는 사건 또는 일화들을 당사자는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박하고 마음 좋았던 A라는 친구가 몹시 청결관념이 부족했던 B라는 친구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좀 청결하게 하고 다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충고했다가 B에게서 “남의 일에 무슨 참견이냐”면서 된통 혼난 일이 있었다. 나는 A에게 그 일이 생각나느냐고 물었더니 A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C는 D라는 친구에게 중학교 3학년 재봉 시간에 원피스 만들기를 배울 때 다른 아이들은 모두 허리 위와 아래를 박음질해서 붙이는 어려운 원피스를 만들었는데 D만은 위아래가 통짜로 된 원피스를 만들어 모든 친구가 영리하다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D는 “내가 그랬었니?”하고 신기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와 한 반을 했던 E라는 친구는 나에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스튜어트 그레인저였지?”하고 물었다. 나의 의식 속에서 스튜어트 그레인저가 사라진 지가 오래 됐는데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영화배우에 심취했던 철없는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니 별로 교류가 없었던 친구들까지도 몹시 반갑고, 그 시절에 이야기를 나눠 본 일이 없거나 한 번도 같은 반을 해 보지 않은 친구들과도 금세 친밀감이 우러나오고 정이 들었다. 사실은 학교 다닐 때 나를 몹시 미워해서 아주 고약하게 굴었던 친구도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나니 반갑고 웃음이 나왔다.
감성이 여리던 시절, 인생에 대해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던 시절을 한 울타리 안에서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답게 느껴지고, 비록 얼굴만 스친 정도라 하더라도 세월이 곰삭여 준 정리가 큰 것이다.
내가 다니던 여자 중·고등학교는 당시 명문으로 ‘날리던’ 학교여서 학생들의 자부심도 강하고 명문 대학 진학률도 높았기 때문에 오늘날 전문직 여성으로 자기 분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람도 상당수 있었고, 대부분은 남편과 자녀들을 훌륭히 뒷바라지해서 큰 보람을 거두고 있었다. 남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는 친구들도 그러나 지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힘든 고비, 정신적 위기를 한두 번쯤 넘겼고 생존 자체를 위해 오랫동안 고생하고 투쟁한 친구도 적지 않았다.
40년 후에 지금의 군대 동기·상사·부하들에게 정답게 기억될 만한 품성과 행동을 지금부터 마련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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