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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20세기 한국여성의 사회사를 사진으로 엮고, 여러 사회 명사들과 일반 시민의 어머니를 회고하는 글들, 그리고 바랜 가족 사진과 의미있는 유품들을 모아놓은 ‘아! 어머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나도 우리 어머니가 번역하신 책의 육필 번역 원고와 어머니가 맏딸(나의 큰언니)에게 손수 만들어 입히셨던 예쁜 꽃무늬 원피스를 전시품으로 내 놓았기 때문에 개막식 날 가서 관람했다.
우리 어머니만 초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전시회를 보면서 정말 우리 윗세대의 어머니들은 어쩌면 그렇게 모진 고생 속에서도 강인하고 인자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리고 한편 숙연해졌다.
우리들은 며칠도 못 견딜 것 같은 가난이나 고난을 그리도 꿋꿋하게 몇 년, 몇 십 년 이겨내시면서 자녀들을 셋, 넷, 다섯, 열 명까지도 길러낸 어머니들은 정말 위대했다. 그러니까 전시회의 부제(副題)인 ‘당신이 만든 대한민국입니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한마디로 완벽하게 집약한 말이었다.
물론 우리 아버지들의 삶도 대부분 시련과 고난의 삶이었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토록 강인하게, 그토록 헌신적으로 가정을 지키며 자녀를 길러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의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늦둥이 막내가 자라서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 늘 새벽에 물동이를 이고 맨 먼저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부뚜막에 떠놓고 열심히 기도하고, 그 물로 밥을 지어 5리를 걸어 나가서 기차를 타고 통학했던 아들에게 먹여서 보낸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어머니, 여자고등학교 앞길에서 좌판행상을 하면서 여학생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장사하는 아들에게 장사를 하려면 당당하게 얼굴을 보이면서 하라고 꾸짖은 이명박 시장의 어머니, 계모였지만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우겨서 진학을 시키고, 60리 통학길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학교 기숙사의 식모를 살았고,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먼저 대전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셨다는 강동구 성내동 주강식씨의 어머니. 어느 어머니의 사연이나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위해 절대적으로 헌신하면서도 또 지극히 엄격했다. 그래서 자녀들이 역경 속에서도 삐뚤어지지 않았고,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자녀들에게 강한 성취동기가 됐다. 어머니들이 철저히 자기를 죽이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봉사했기 때문에 요즘 50·60대 또는 그 이상의 남자들은 자기 아내들에게 어머니 같은 희생을 해 주기를 은근히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어머니는 별을 보고 일어나서 하루 종일 부엌에서 땀 흘리다가 달을 보고 잤다’ ‘우리 어머니는 식구들을 먹이느라고 고기 반찬은 입에 대신 적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밖에서 아이를 낳아서 데려 와도 한마디 불평 없이 자기 자식처럼 기르셨다’면서. 그러나 그 남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어머니들이 물론 기꺼이 희생을 했지만 그러나 자기의 딸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할 필요가 없고 자립적이고 자기성취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어머니라면 며느리 역시 능력을 큰 영역에서 발휘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유교적인 여성관에 충실했던 어머니들도 오늘날 여성의 향상된 법적 지위, 그리고 사회 진출의 기회를 기쁘게 생각하셨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요즘 세대의 이기심과 나약함 때문에 몹시 근심하실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신 어머니들께 드리는 진정한 보답은 정의사회를 만들어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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