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은 대중의 요구에 의해 창조된다. 어떤 때는 윌리엄 텔이 쏜 적이 없는 사과나 폴 리비어가 마치지 못한 질주(疾走)나, 바바라 프레취가 흔든 적이 없는 깃발 같은 아주 빈약한 소재에서”라고 제럴드 존슨은 말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영웅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의 일상은 답답하고 따분하기 때문에 우리 삶에 자극과 활력을 가져다 줄 영웅의 출현을 무의식중에 기대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연히 사람들의 영웅에 대한 환상을 이용해서 ‘영웅’이 되어 시대를 정복할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영웅이 되고 싶은 욕망, 영웅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아가 약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대부분 영웅 심리에 불타는 사람들의 영웅주의에 피해를 입어 보았다. 영웅심리에 들뜬 사람은 (그들이 보기에) 평범한 사람들을 자신이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보다는 자기의 영웅적 위상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수혜자가 되어야 할 사람을 피해자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숭배할 영웅을 갈망하는 사람은 그들이 ‘영웅’으로 지목한 사람에게 갖는 지나친 기대로 인해 그 대상에게 막중한 심리적 부담을 준다. 그 대상이 자기의 기대에 어긋날 경우에는 분노해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이념적 투쟁으로 지지자, 추종자를 많이 갖게 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이념이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그의 추종자들의 강요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에는 뭇사람의 ‘숭배’를 받을 만큼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러니까 ‘숭배’를 받을 목적으로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사기성(詐欺性)이 있거나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이기 쉽고, 누구에게 나의 영웅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 역시 남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미성숙한 사람이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예전에는 부모가 딸들에게 결혼하면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나는 남녀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도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하늘’같은 지아비의 역할을 해야 할 남자들이 중압감에 질식사하지 않고 멀쩡하게 사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옛날에, 신랑감의 얼굴도 못 보고, 또는 겨우 한두 번 보고 결혼했던 여성 중에 ‘하늘’처럼 우러러 받들 수 있는 신랑을 기대했다가 하늘이 무너지는 환멸과 허탈을 느낀 여성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은 그냥 생긴 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자기의 ‘천사’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꽤 흔했다. 인간인 여자에게 ‘천사’가 되라는 것은 모든 인간적인 욕망과 개성을 버리고 박제한 인간이 되어 달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나도 젊었을 때 그런 요청을 한두 번 받은 일이 있는데, 나는 그 때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천사가 될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마음 속에서는 ‘나더러 일생 너의 이상형에 맞추느라 전전긍긍하며 살란 말이냐’는 원망이 끓어올랐다. 그래도 미련해서 ‘너는 천사의 배우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야유는 떠오르지 않았고, 떠올랐더라도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양속담에는 ‘no man is a hero to his valet’(자기의 시종에게도 영웅인 사람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꼬아서 ‘no man is a hero to his wallet’(돈지갑 앞에서도 영웅인 사람은 없다)로 재치 있게 변형시킨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공연히 ‘영웅’이 되고 싶은, 또는 ‘영웅’을 추종하고 싶은 유아적 자아를 포기하고 성실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덕성을 함양해서 측근도 우러러볼 만한 사람, 돈지갑이 비어도 의연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함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