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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 이은주씨가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젊은 여성이 자살할 만큼 우울증을 앓았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 우울증은 삶의 의욕 자체를 저하시키기 때문에 중증일 경우 스스로를 구원할 의지마저 상실하기 쉬워 정말 치유하기 어려운 병이다.
좀 속된 처방이지만 나는 자살에 대한 제일 좋은 예방약은 ‘열심히 일하면 벌어서 갚을 수 있을 정도의 빚’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집안에 복잡한 사정이 있어 매우 괴로워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자기가 며칠 전에 자살하고 싶었는데 나에게 꾼 돈을 갚고 죽어야 하겠기에 자살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그때 나에게 꾼 돈은 몇백 원(지금 가치로 1만∼2만 원 정도?)이었는데 나 역시 몇백 원의 빚을 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죽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경우 자살은 세상을 향한 어떤 선언이다. ‘너희들, 왜 나를 버렸느냐’ ‘나는 이런 상황까지 참으면서 살지 않겠다’ ‘나는 죽음으로 속죄한다’ 등. 사소한 빚 때문에 그 선언이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은 누구도 참을 수 없다.
물론 갚을 길이 도저히 없는 거액의 빚을 졌다든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졌다든지 하는 경우는 그 자체가 절망의 원인이지만 내게 큰 고민이나 마음의 상처가 있더라도 회사에 즉각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든지, 당장 친구가 곤경에 빠졌다든지, 가족이 아프다든지 할 때는 나의 괴로움을 의식의 뒤편으로 밀어 두게 된다. 그래서 급한 일을 열심히 해결하다 보면 그토록 숨통을 누르던 문제도 한 발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 있는 단기적인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생의 권태와 우울을 방지하는 데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 물론 의미 있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크고 화려한 꿈을 가진 것이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실현 불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자기 왜소감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정진하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집념이 될 경우 그 집념이 성취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마음의 병을 초래할 가능성도 많다.
어떤 사람은 목표 달성을 자신의 노력보다 운에 의존하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도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르기를 바라고, 가끔 횡재도 했으면 싶은 유치한 바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신의 총애가 거두어진 것 같을 때, 신이 내 편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 때 곧바로 절망하고 자신을 저주받은 존재처럼 느끼는 사람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절망을 방지하기 위해 시련은 주님이 우리에게 내리는 시험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실제로 어떤 대기업 관계자의 말을 들으면 수뇌부가 어떤 직원을 간부감으로 찍었을 때 적절한 시기에 ‘물을 먹여’ 본다고 한다. 그래서 약간 ‘좌천’이 됐을 때도 열심히 일하고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는 직원은 크게 기용하고, 자기가 밀려나는가 싶을 때 술 먹고 윗사람들을 원망하면서 허물어지는 사람은 절대로 중용을 안 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이런 식으로 시험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역경을 이겨 내면 우리를 몇 배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운명이 우리에게서 총애를 거두어 간다는 의심이 들 때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자. 운명이 나를 돌보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내가 꿋꿋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나의 고단함을 감싸면 언젠가는 운명이 나를 향해 미소지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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