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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피겨스케이팅 경기 관람이다. 나 자신은 스케이트를 못 타지만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진행되는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보면서 시각·청각적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인간의 육체가 도달할 수 있는 신묘한 능력과 예술성에 경탄하고 기뻐하게 된다.
피겨스케이팅 경기 시간은 불과 몇 분이지만 선수들은 그 몇 분의 경기를 하고 나면 완전히 탈진하는 것 같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벼르다가 솟구쳐 올라 공중에서 순식간에 3.5회전을 하는 묘기는 피겨스케이팅의 백미(白眉)인데 메달리스트들도 왕왕 내려오면서 넘어지는 것을 보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연습하면서 부상을 입지 않는 선수가 별로 없다는데 몇 번씩이나 부상당하고 어려운 수술을 한 선수들도 계속 운동하는 것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아이스댄싱에서는 액슬이나 러츠 등의 공중 회전 묘기를 하지 않는 대신 남녀 선수가 완벽히 어우러져 활기 있고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일생 ‘체육 낙제생’이었던 나에게는 인간이 육체를 그토록 아름답고 정교한 도구로 가꿀 수 있다는 것이 경탄스럽기 짝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집에서 책만 읽고 밖에 나가 뛰어놀지 않아 체육을 너무나 못했지만 나의 부모님은 신체 단련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분이셨다. 나 자신도 운동은 할 시간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살면서 늘 체력이 달려 쉽게 피곤하고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앞두고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일찍이 신체 단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력을 길러 좀 더 적극적으로 생에 임했더라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유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많다.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는 인간의 육체 단련을 중시하지 않았다. 사실 공자님은 육체의 단련을 강조하지 않았을 뿐 말타기·활쏘기 등을 선비의 기본 교양으로 당연시했는데 지배 계층이 문반·무반으로 나뉘면서 문반은 책만 읽고 육체를 쓰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무반과 차별화함으로써 선비가 문약해진 것이다.
중국에서 선비 계급은 남자들도 장삼(長衫)이라는 발끝까지 오는 저고리를 입었고, 여자들은 복장이 비활동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발을 오그라뜨려 싸매 주먹만 하게 만드는 ‘전족’이라는 (당시 귀족들은 고도의 문명으로 자만했던) 야만스러운 풍습까지 있었으니 여자들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었겠는가. 19세기 말 동양이 서양 문명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 것은 신체 단련을 경시함으로써 정신마저 나약해진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도 기독교의 교리는 육체를 죄악의 근원으로 보고 육체의 억압을 수양의 근본으로 보았다. 그래도 서양에서는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신사 계급의 남자들이 검술·승마를 기본 교양으로 익혔고 활동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숙녀들도 집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기독교 이전의 그리스 문명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고 육체의 능력을 최고도로 배양하는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신체를 고도로, 지속적으로 단련하기 위해서는 정신력이 필요하므로 단련된 육체를 지닌 사람은 대체로 고통이나 시련 앞에서 의연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 체력 단련이 싫어서 보약으로 체력을 기르려고 한다면 졸렬한 생각이 아닐까. 군대라는 곳은 싫든 좋든 체력을 최대한으로 단련해야 하는 곳이다. 체력 단련이 싫고 지겨운 사람에게는 군대는 지옥일 것이다. 그러나 체력을 인생의 가장 확실한 자본으로 인식하고 체력 단련의 기회를 기꺼이 활용하려는 사람에게는 군 복무가 고맙고 보람 있는 기간이 될 수 있다. 운동을 싫어해서 쉽게 피로하고 의욕이 부진했던 선비님들은 올해를 체력 단련의 원년으로 삼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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