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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세상살이 중에서 제일 괴롭고 서글픈 것이 인간과의 갈등이다. 그러므로 우울증의 최대 원인 역시 어그러진 인간관계일 것이다. 반면에 최고의 행복과 살맛 역시 사람에게서 얻는 것임은 물론이다. 나는 늘 학생들에게 ‘학문에의 투자는 제일 확실한 투자이고, 학문에 투자해서 손해를 보거나 배신을 당하는 일은 없다’고 말하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우리가 학문을 하는 것, 기술이나 재능을 연마하는 것, 돈을 벌고 출세하려는 모든 노력이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혜택을 줘 많은 사람과 좋은 유대를 갖기 위해서 또는 더 많은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다. 대개 사랑받을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의 존재가 돼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만약 우리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면 인간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달력을 만들어 시간(날짜)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갈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살아남기 위한 의지도 꺾이고 더 이상 날짜를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날짜라는 것은 사회생활하는 사람에게 필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사람과의 관계가 끊긴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인간관계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과의 갈등이 그렇게 괴로운 것이다. 일생 동안 밉살스럽고 혐오스러운 인간들 사이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과 절해고도에서 영원히 홀로 살아야 하는 운명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20세기의 대표적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희곡 ‘출구가 없다’에서 “지옥이란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지옥이란 유황불 속에 던져지고 온갖 무시무시한 신체적인 고문을 당하는 곳이 아니라 견딜 수 없이 욕지기나는 인물들과 출구가 없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정말 일생을 악랄한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일생을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다시는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아주 못된 인간들 사이에서라도 인간과 더불어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던 몇 년 전의 그 ‘막가파’들도 죽기 전에는 뉘우쳤고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 장기도 기증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람이 쉽게 변하기를 기대한다든지 감동시켜서 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은 금물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지만 쉽게 변화시킬 수는 없다.
사람이 스스로 굳게 마음만 먹으면 딴 사람이 될 수 있거나, 합리적인 설득으로 또는 뜨거운 감동을 주어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 세상의 감옥은 텅텅 비고 사기나 배신을 당해 우는 사람도 거의 없고,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비탄 속에서 살아가는 아내도 아주 드물지 않겠는가.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하거나 변화시키기는 너무도 어려운 존재이지만 다행히 대부분 사람의 마음에는 선의와 심술, 이기심과 희생정신이 혼재돼 있다. 그래서 악인을 성자로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해도 가끔 선한 마음이 발동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안 보려던 사람과도 공생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서 선한 마음, 옳은 의지가 발동되도록 하려면 나 자신이 정당한 목표와 악의 없는 심성,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열린 마음과 넓은 공감대를 가졌을 때 성공률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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