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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딜레마를 헤쳐 나가는 일과 같습니다. 딜레마는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 크기가, 혹은 깊이가 다를 뿐 언제나 사람들의 가까이에 있습니다. 용돈이 궁한 것, 입시에 낙방하는 일, 직장이 잘 구해지지 않는 일, 애인이 군에 입대하는 일, 가족과 사별하는 일, 생각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않는 일 등 등, 우리가 겪는 아픔과 어려움이 모두 딜레마가 아니겠습니까. 또 딜레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있고, 기업에도 있고, 국가에도 있습니다.
절망이나 좌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서고, 자신을 에워싼 딜레마를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고 너무 단순하고 너무 빠르게 단정하면서 거기에 잠겨듭니다. 그런 현상을 좌절이라고도 하고 절망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이면서 미래학자이기도 했던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딜레마의 극복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하면서 도전(딜레마)을 어떻게 응전(대처)할 것인가에 따라 문명이 생겨난다는 탁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도전과 응전’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좌절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딸 수가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문학이나 철학에서도 절망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만, 극복하지 못하는 절망을 적어놓은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있다면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을 집행되는 경우가 진짜 절망이라고 적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 온 행로가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면서 누구나 견디기 어려운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믿지만,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삶이 아름답고 거룩하게 전개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절망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희망에 속는 것 보다는 더 많은 절망에 속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독자들이여, 깨끗이 닦아진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보십시오. 그 얼굴이 수많은 절망을 견디면서 살아온 거룩하고 굳건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얼굴이 갖가지 절망을 이겨낸 거룩한 얼굴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좌절과 절망에서 허덕이는 연약한 자신이라고 판단합니다. 엄청난 착각입니다. 스스로 철저하게 속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좌절과 절망을 알게 모르게 잘 극복해 왔으면서도 새로운 딜레마를 만나면 겁부터 내게 되고, 절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절망인데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은 바로 여기서부터 싹트게 됩니다. 자신을 가지라, 혹은 의지를 세우라고들 합니다만, 절망할 일도 아닌 조건에서 마음부터 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반듯이 절망을 뜻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절망으로 인해 생겨나는 좌절감이 바로 희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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