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발표할 자유가 인류의 정신적 복리에 필요한 것일까?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그 이유로 4가지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만약 어떤 의견이 침묵을 강요당한다고 하자. 그럴 때 침묵을 강요당한 그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무오류성(無誤謬性)을 가정하는 것이 된다.
둘째, 설사 침묵을 강요당한 의견이 오류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의 일부를 내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혹은 지배적인 의견일지라도 전체가 진리인 경우는 드물거나 절대로 없으므로 진리의 나머지 부분이 보완되는 것은 상반되는 의견의 충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셋째, 비록 일반에 받아들여진 의견이 진리일 뿐 아니라 진리의 전체라 해도 만일 그것이 힘차게, 열심히 논쟁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 의견의 합리적 근거를 거의 파악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면서도 그 의견을 하나의 편견의 형식으로 신봉하게 된다.
넷째, 그리하여 비단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교설(敎說) 그 자체의 의미는 상실되거나 약화되어 인격과 행위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력을 빼앗기고 말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신조(信條)는 영원히 무력한 형식적 고백이 되어 버리며, 거치적거리는 것이 되어 무엇인가 진실하고 충정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 이성이나 개인적 체험에서 성장해 나오는 것을 쓸데없이 방해하게 된다.
다소 장황하게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을 인용한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토론을 강조하여 출범한 참여정부 아래서 날이 갈수록 이른바 개혁 세력으로 자임하는 집단들에 의해 그들의 주의 주장과 다른 의견의 표현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풍토가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방송위원회의 위탁으로 한국언론학회가 수행한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 분석’ 보고서를 둘러싼 KBS,MBC 및 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단체들의 반응이 그러하다. 자신들의 시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보고서 자체가 연구자들의 편향성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매도하거나 인신공격부터 한 것은 논쟁을 위한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보고서의 결정적 결함으로 지적한 산술적 균형성만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재단한 것은 역사성과 시대정신을 망각한 몰가치적인 접근이었다거나, 탄핵 사태를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파악한 것은 전제부터 잘못 되었다는 주장 등이야말로 합리적인 논쟁을 거쳐 검증될 중요한 쟁점임에도 자신들의 정당성만 일방적으로 강조했다.
이 보고서와 관련해 몇몇 언론 미디어 연관 학회들의 대응 방식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보도된 것처럼 방송학회장이 “공정성의 개념은 연구자가 어떤 이론적 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 또한 다르게 나올 수 있다”면서 “언론학회의 이번 보고서는 특정 연구진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물이지 객관적인 보고서가 아니다”고 말한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동학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말한 의견이 지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연구자라면 보고서의 연구 방법론이 방송의 공정성 여부를 분석하는 데 적합했는지, 엄격한 과학적 절차에 따라 분석이 진행되었는지 등을 먼저 언급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학회의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 분석’ 보고서의 경우를 사례의 하나로 들었지만 자신들의 주의 주장만 옳고 그와 다른 의견은 오류로 매도하는 풍토가 고착되어 간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의 충돌로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는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급하기조차 싫지만 전체주의의 등장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경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정부라고 인식되어 왔으나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압제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풍토야말로 더 무서운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