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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은 사회과학의 연구 방법을 기사쓰기에 활용함으로써 독자나 시청자 또는 네티즌들에게 더욱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요한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에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 같은 여론조사 보도는 특정 관심사에 대한 공중의 의견이 어떠한지를 알려 줄 뿐 아니라 보도 자체가 그 문제에 대한 여론 형성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여론조사 보도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매력 때문에 여론조사 보도는 오용되거나 남용되기도 한다. 먼저 여론조사 보도는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해 흥미를 갖게 하기 때문에 남용되기 쉽다. 한편 여론조사의 결과는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얻어진 것이므로 믿을 만하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오용되기도 한다. 어떤 조직이나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하거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론몰이를 겨냥해 여론조사 결과를 이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여론조사 보도의 가장 심각한 역기능은 바로 그 같은 여론 조작의 수단으로 오용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를 어떤 방식으로 오용하고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조사 방법을 왜곡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표본을 조작할 수도 있고 원하는 응답이 나올 수 있도록 설문을 만들 수도 있다. 예컨대 지난 8월 말 발표된 ‘언론 개혁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편집권의 독립과 관련해 “언론 소유주로부터 편집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응답이 약 70%,방송 개혁과 관련해 “방송 제작·편성에 시청자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약 64%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두 질문에는 문제가 있다. 왜 그럴까? 언론사 소유주가 편집권을 침해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기자나 언론학자를 대상으로 물었다면 모르겠으나 일반 국민에게 응답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이어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조사에는 적절치 못한 질문항이기 때문이다. 또 방송의 제작과 편성에 시청자의 참여를 늘려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은 ‘시청자의 참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두 질문항의 문제점 때문에 조사가 모두 왜곡된 방법에 의해 실시된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부적절한 설문을 통해 얻은 결과를 내세워 언론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이렇다고 공표하는 것은 여론조사를 오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여론조사를 오용하는 두 번째 방법은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를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달 말 ‘언론인·언론학자 언론개혁 현안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메일 설문을 통해 실시된 이 조사의 대상자는 전국 언론사에 재직하고 있는 언론인(기자,PD)과 언론학회 소속 언론학자 1350명이었다.
이 중 조사 기간 안에 응답한 사람은 모두 219명이었다. 응답률은 전체 조사 대상자의 16%에 지나지 않았으며, 응답자의 직업별 구성은 언론학자가 92명으로 42%나 되었고 언론인 127명 가운데 PD는 고작 14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이 조사 결과는 낮은 응답률과 응답자 구성의 편중성 때문에 전혀 모집단의 대표성을 획득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분석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 공영방송의 매체 비평 프로그램은 이 조사 결과를 인용해 언론 개혁을 강조하는 방송을 했다.
일반 독자나 시청자는 이 같은 여론조사의 오용을 알 수가 없다. 과학적 방법으로 얻은 결과일 것이므로 그런 보도를 의심 없이 수용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피해를 줄여 보고자 미국여론조사협회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①표본의 정확한 크기 ②조사에 책임 있는 후원자 또는 조사 기관 ③실제 조사에 사용된 그대로의 설문 내용 ④표집 오차와 신뢰 수준 ⑤모집단의 정확한 정의 ⑥구체적인 자료 수집 방법 ⑦정확한 조사 시기 ⑧하위 표본을 이용할 경우 그 크기 등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1969년에 이미 천명했다.
한국 언론도 그 같은 조사의 요소들을 많이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여론조사의 오용이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 조사의 모든 과정을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오용을 막는 유일한 길은 진실만 말하는 언론의 정도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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