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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경제가 성장지체 현상을 보이는 것은 경제구조가 20세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다 많은 기업들이 기술혁신과 경영개선을 게을리 해 국제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어요. 여기에 천민자본주의 확산, 가치관 혼란, 갈등 심화와 같은 지역사회시스템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정책적으로도 선성장 다음에 분배를 늘려가야 할 텐데 분배중심 정책만 강조하고 있어요. 성장원동력과 생산효율성이 떨어지고 기업가 정신이 감퇴하니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 밖에요.”
30년 현대건설맨으로 ‘건설업계 대표 CEO’의 명성을 떨쳤던 이내흔 전 현대건설 사장(69 현 현대통신 회장)은 과거 경제성장기를 다잡았던 강력한 ‘통합 리더십’이 아쉽다며 말문을 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뚜렷했던 60~70년대, 민주화 정신이 살아있던 80~90년대, 국민의 위기극복능력을 보여줬던 외환위기 등 매시기 국력을 하나로 묶어 공통의 목표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회적 리더십이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한장의 기적을 일궈낸 절체절명의 경제개발정신이 지금 정부, 기업,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다”며 “파쇼적 리더십이 아닌, 국민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순수한 의미의 리더십이 나타나야 이 어려움을 깨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의 재도약 저력 믿는다’
이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그룹 핵심멤버이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세대 오른팔’로 꼽힌다. 지난 70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98년 퇴직할 때까지 울산조선소 착공,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해외건설 개척, 국내 주택건설 부흥 등 이제는 신화가 된 현대건설 역사의 현장에서 정명예회장과 함께 일했다. 정명예회장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힐 만큼 존경심과 그리움도 변함없는 모습이다.
“무역부 과장이던 72년 어느 날 회장님이 부르시더군요. 난데없이 “울산조선소(현 현대중공업)를 만들려는데 함께 일하자”고 하시는데, 그때부터 이사가 될 때까지 내 위로는 상사가 회장님 한 분밖에 없었어요. 직접 지시를 받아 자재조달과 통관업무를 맡으면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지요. 매일 저녁 6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 놓고 회의를 하고 군화 차림으로 주먹밥에 깍두기로 끼니를 때워도 그때는 꿀맛이었습니다.”
이회장은 정명예회장의 아이디어나 추진력,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 직관력, 개척적 사고 등에서 “당할 자가 없었다”며 모든 면에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 위대한 CEO를 추억했다. 특히 비교적 최근 일인 금강산 선상호텔 사업과 서산방조제 공사 관련 일화는 고령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맨이었던 정명예회장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금강산에 호텔을 짓는 데 시간이 걸린다. 허가가 어렵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니깐 ‘그럼 못쓰는 배를 사다가 개조해서 선상 호텔을 만들어라’라고 하셨지요.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밀물 썰물 때 유실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었던 서산 방조제 공사에선 물막이가 큰 난제였습니다. 자동차만한 바위덩어리가 휩쓸려 내려가고 철사로 엮은 돌망태기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급류엔 속수무책이었어요. 그때 회장님이 고철로 쓰려고 구입한 유조선을 끌어다 물줄기를 막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이 탄생한 거지요.”
실제로 유조선을 끌어다 물줄기를 막아놓고 바위를 투하하는 ‘정주영 공법’은 이후 <뉴스위크>와 <타임>에 소개되며 세계적인 철구조물회사의 벤치마킹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회장은 경제 인프라 건설을 주도한 시기에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는 뿌듯함 또한 숨기지 않았다.
사실 현대건설이 한국경제발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으로는 개발정책의 선도 역할을 담당하면서 해외진출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기적을 이뤄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 치열한 승부 끝에 수많은 승리를 낚은 진정한 벤처기업이었다는 점에서는 별 이견이 없다. 이회장은 70년대를 “자연과 싸운 시기”라고 표현하면서 “대기업 회장이 현장소장처럼 뛰는 등 모든 구성원이 한몸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76년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경우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렸지요. 공사 계약금만 해도 당시 국가 예산의 절반인 9억 3,0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때 나는 조선분야와 중동 진출 업무를 겸했었는데, 하루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나날이었어요. 특히 이때는 ‘현대의 성장이 곧 국가의 성장’이라는 회장님의 보국이념이 투철했던 때였습니다. 건설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바탕으로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을 육성해 세계 일류수준으로 만든 점은 특히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현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회장이었기에 외환위기 이후 현대건설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았던 것은 아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회장이 현대건설을 떠난 직후 벌어진 일이라 더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는 “성장정책과 투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고 이라크 등지에서 막대한 미수금이 발생한데다 외환위기까지 겹쳐 좌초 위기까지 맞았던 것”이라며 “하지만 끊임없는 창조정신과 불굴의 개척의지로 난관을 기회로 만들어 온 만큼 거뜬히 일어서고 있지 않느냐”고 밝게 웃었다. ‘현대건설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독보적인 대외신뢰도에 ‘현대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재들이 있기에 걱정 안한다는 말이다.
‘강력한 리더십 글로벌 경제정책 아쉬워’
이회장은 경제개발의 거대한 흐름 한가운데 족적을 남긴 이답게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대기업정책에 대해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과거 개발시대에 형성된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려는 강한 의지는 이해되지만 우려 또한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과의 역차별 문제가 우려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 강화한다든가, 누적된 분식회계 문제를 처벌한다든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단소송제를 관철하려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대기업을 불신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는 시각도 변함이 없고요. 하지만 세계는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바뀐 지 오랩니다. 경제정책에 ‘국내용’이 따로 있을 수 없는 환경이지요. 기업은 스스로 성장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는 만큼, 기업 스스로 시장경제 원리 속에서 판단하고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 기업들에게 그만한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게 이회장의 생각이다. ‘세계 100대 기업에 우리 기업이 10개 이상 들어가기 위해 무슨 지원책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통합 리더쉽 출현이 해법이라는 그의 지론도 이 같은 현 경제정책의 부작용 우려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광복 60년만에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저력을 한 곳에 결집시켜 새로운 생산적 에너지로 발산시키는 리더쉽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최근들어 부쩍 많이 하는 까닭이다.
같은 이유로, 과거의 경제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위기를 깨쳐나가기 위해서는 고성장 위주의 정책경험까지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회장은 “소득수준 1만달러를 달성하기까지 정부와 재계는 한몸이 돼 고성장을 이뤄냈다”고 밝히고 현 정부도 과거와 같은 고성장 중심의 정책을 강화해 경제 시스템 내부의 부효율적인 부분을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물론 기업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기업시민정신’을 함양해 훨씬 도덕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펴야 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회장은 우리 경제가 마냥 위태롭다는 비관적인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어느 국가보다 희망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자기계발에 열심인 모습에서 밝은 미래를 본다고 밝혔다.
“혹자는 국민들이 쉬운 것. 편한 것만 찾아 나태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저축률이 20%를 웃도는 것만 봐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라고 불 수 있어요. 많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지만 이들은 적극적인 참여정신과 열정, 힘을 바탕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젊은 세대들도 온고이지신(溫故而池新)의 자세를 갖춰야 할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 걸출한 성과를 이뤄낸 ‘원조벤처’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이회장은 지금 홈네트워크 관련 벤처기업 현대통신의 오너 경영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건설업계 대부로 천하를 호령했던 경험이 결코 녹슬지 않아, 외형 200억원대의 조그만 기업을 6년만에 6배 규모로 키워냈다. 이회장은 “이익을 못내는 CEO는 사회악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하고 “원칙에 충실하고 투명한 경영, 비전을 제시하는 경영을 한다면 어떤 위기도 넘을 수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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