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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는 참 견디기 힘듭니다. 그랬었습니다. 지금도 추위를 생각하면 견딜 일이 아득해집니다. 미리 덜덜 떨기조차 한다고 묘사해도 좋을 정도로 추위가 두렵습니다. 뭐 생리적으로 몸이 추위를 못 견디게 되어 있어 그랬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추위를 누구보다도 꽤 잘 견딥니다. 오히려 겨울보다 여름이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추위걱정을 도무지 하지 않고 삽니다. 그런데도 그 때 추위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립니다. 가슴 속에서부터 얼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방에서 이레들 명씩 살았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래야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리라고 여기신 듯합니다. 또 그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이들은 큰 아이들의 ‘먹이’일 뿐이었습니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세수를 시켜주어야 했는데, 그 일조차 어떤 큰 아이도 한 일이 없습니다. 물로 얼굴을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먹이나 매로 다스리면 세살짜리 작은 아이도 세수를 한다는 것을 큰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저녁 다섯 시에 군불을 땠습니다. 산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들을 방마다 배급을 받아 불을 지폈는데 군불 때는 시간이 20분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큰 아이들은 그 일을 서로 맡으려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언 물을 깨트리며 걸레를 빨아 청소를 할 동안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수 있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불을 지폈다고 방이 따듯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겨우 아랫목 방석만한 넓이가 냉기를 가셨을 뿐인데 땔감이 아주 적었던 탓도 있지만 불을 때는 아이가 불을 아궁이 깊이 넣지 않고 저 혼자 쬐고 있었던 탓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선생님들은 방마다 돌아다니시며 작은 아이들을 아랫목에 누이고 큰 아이들은 윗목에서 자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이 확인하시는 순간뿐이었습니다. 으레 작은 아이들은 윗목으로 밀려났고 큰 아이들이 아랫목을 차지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펴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눈을 피해 우리는 틈만 나면 햇볕이 있는 담장 밑에서 서로 몸을 비벼댔습니다. 동동거리면서, 서로 밀면서,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있다가 햇볕이 가시면 모두들 조는 닭처럼 쭈그리고 앉아 오돌 거렸습니다. 큰 아이들도 그랬으니 작은 아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실제로 선생님들은 우리를 보시면서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는 병아리 같은 놈들! 좀 뛰고 해봐. 추위를 이겨야 하잖아!’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선생님이었다 해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못난 병아리 새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추위가 더 힘든지 배고픔이 더 힘든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워서 배고팠는지 배고파서 추웠었는지 분간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가끔 우유죽을 먹기도 하고, 때로 소금에 절인 배추가 김치처럼 곁들여진 밥을 먹을 때도 있고, 통조림 생선 토막이 배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어느 때는 아침에 일어나 죽 줄을 서서 간유(肝油)를 한 숟갈씩 먹은 일도 있습니다. 높은 사람이 보러 온다는 날, 우리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간유도 먹고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는 것을 ‘학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 저녁이면 우리는 너나없이 설사를 하느라 밤새 변소를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안남미 밥 한 공기와 그 위에 각설탕만한 버터 한 조각, 그리고 찍어먹을 간장 그릇이 놓인 밥상에 앉곤 했습니다. 크게 세 숟갈이면 밥그릇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그렇게 끼니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의 밥을 뺏어먹는 일은 없었습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절대로, 절대로, 없었습니다. 가끔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에게 밥을 꾸는 일은 있었습니다. 한 숟가락을 꾸면 다음 끼니에 한 숟가락 반으로 갚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아이의 밥이라도, 큰 아이가 자기 밥을 꾸어간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작은아이의 밥이라도, 큰 아이들은 그렇게 갚았습니다. 윗목 찬 데로 작은 아이를 밀쳐버리고 아랫목을 차지한 큰 아이도 그렇게 했고, 으레 떼쓰고 우는 작은 아이 세수시켜주는 일이 귀찮아 매로 다스리는 큰아이도 그랬습니다. 먹는 일에는 누구나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추위가 심해도 배고픔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가 부르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것이 추위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아무리 그릇되었다 하더라도 배고픔을 공감하는 한, 배고픔을 이용한 못된 짓은 할 수 없을 만큼은 착한 듯싶습니다.
결식아동들에게 주었다는 점심그릇, 거기 있는 건빵 몇 개, 그리고 아이들이 그 점심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편지를 썼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분노 때문이었는지,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 설명할 수 없는 자학 때문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추위에 오돌 오돌 떨며 ‘조는 병아리 같은 놈들’도 ‘그 짓’은 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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