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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정진홍   |  2005-10-14 13:35:07  |  조회 2079 인쇄하기
점점 더 심해진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꽤 오래전부터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른 것은 이것저것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저 스스로 건망증에 걸린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식들과 남매들 이름이나 오래 자주 만나 ‘함께 살아간다’고 묘사할 수 있을 동료나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함을 건네고 인사를 하고 서로 즐겁게, 또는 일을 가지고 담소를 나눈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경우, 저는 대체로 그분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반가운 얼굴이고, 그래서 낯이 익은데, 언제 어디서 왜 만난 누구인지 거의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잦습니다. 당연히 결례를 하게 되고, 서로 난처해지곤 합니다.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고 외워야 하겠다고 작심을 한다면 그것 못할 까닭이야 있겠습니까만 결국 관심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귀하게 마음에 지녀야 할 사람이 있어 그 이름이 가려지거나 걸러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요즘 저는 손자 재미에 흠뻑 빠져 과장한다면 세월 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녀석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어준 이름인데, 기막힌 일입니다. 너무 가까운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편이 더 곤란하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 중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연대(年代)입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저는 아무래도 이 편이 더 괴롭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참 오래전부터 ‘제 나이를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제 진술이 도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실 만큼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의도적으로 셈해본 적이 없습니다. 갑자기 누가 물으면 즉각 답을 하지 못하고 조금 우물쭈물하게 됩니다. 제가 제 나이를 가장 잘 기억한 것은 정년퇴직을 전후한 1년입니다. 그때는 분명했습니다. 제 생전에 제 나이를 몇 년 몇 개월이라고 계산해본 적도 그 무렵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곧 제 나이를 잊었습니다. 내자나 자식들의 나이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게는 몇 살 먹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이 살고 만나고 또 헤어지곤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나이를 기억한다 해서 특별히 득이 될 것도 없고 그렇지 못하다 해서 꼭 실이 될 것도 없다고 여깁니다. 실은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나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이러한 표현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점점 그런 일들을 기억하는 일에 ‘게을러’질 수밖에 없어 결국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른바 연대에 대한 망각증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온통 뭇 숫자에 대한 건망증으로 확대됩니다. 제가 스스로 느끼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가 아니라 모든 연대기(年代記)를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숫자로 이루어지는 사물들에 대한 인식은 제게 아예 거의 불가능한 영역에 속하기도 합니다. 짐작하시겠습니다만 그러니 저는 역사공부에 거의 백치나 다름없습니다.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학이 기막힌 논리고 언어라는 사실을 터득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 그에 대한 애정을 아직도 버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수학 함’이 제게 즐겁고 쉬우리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신문을 볼 때 경제면이나 경제기사로 메운 섹션을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것도 그러한 데 연유한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도대체 1,000원만 넘으면 ‘일,십,백,천,만,십만’ 하고 동그라미를 헤지 않으면 아니 되는 제가 경제기사의 내용을 짐작한다면 그것은 제 가장 세련되지 못한 거짓말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오죽해야 저는 제가 매달 얼마를 받으며 살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살아가는 데 여유가 있었다든가 빡빡하기 그지없었다든가 하는 것은 느껴지는데, 얼마라고 밝혀 말할 수 있는 숫자는 도무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세월을 살아오길 아득할 정도로 오래 했으면서도 그것을 양화(量化)하지 못한다거나 이러저러한 삶을 살아오는 동안 겪고 담은 것들이 한둘이 아님은 분명한데 그것을 또한 양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틀이나 통에 걸맞는 속을 채우지 못한 소치임이 분명합니다. 가난하고 각박하고 공허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여겨도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언제와 누구를 숫자로, 이름으로 기억하지 못해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손자의 이름을 때로 멍하니 잊을 때가 없지 않지만 그 녀석의 미소, 그 녀석의 체온, 그 녀석이 내 목에 감겼을 때의 팔 힘, 그것을 잊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몇 년, 몇 월,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인지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 내게 준 ‘감동’과 ‘희열’을 되새기며 스스로 내 삶을 그윽하게 행복하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연대기로 서술되는 미소와 체온과 힘이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연대기가 서술되는 그러한 미소 등은 이제는 사라진 오랜 옛날의 현실로 기술될 뿐,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성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아예 내 삶을 형해화(形骸化)한다는 항변까지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못난 변명일는지 몰라도 저는 이름도 연대기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저 그때, 그 사람에 대한 참 많은 것을 기억합니다. 그날 그의 얼굴에 스쳤던 구름의 그림자… 그때 그가 다가오면서 들렸던 발소리의 무게… 아, 그때 거기 마침 꺾인 마른 나뭇가지가 버려져 있었지… 문득 보였던 서서히 지는 석양의 빛깔… 왜 너는 그때 거기서, 하필이면 거기서 앉아 있었니? 햇볕이 너무 따가웠는데… 또박또박 쓴 문서에 담긴 욕심의 꿈틀거림, 행간(行間)은 그렇게 읽혔었지. 그래, 그랬었다. 그 종이는 왜 그리 하얗던지!… 무척 서둘렀었다. 바람이 좀 불었을 뿐인데, 왜 그리 급했던지. 네 아쉬워하던 표정, 그게 언제였지? 왜 그랬었지?… 언젠가 네가 앉았던 자리가 꽤 오래 따듯했던 것을 나 알아. 지금도 이렇게 따듯하게 전해져 오는걸… 예수님, 그러셔야죠. 앉은뱅이한테 벌떡 일어나라고 하셔야지요. 그래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앉은뱅이인걸요. 지금, 당장, 여기에서요… 그게 여름방학 때였지? 몇 학년이었던가, 우리? 몰라, 몰라도 돼. 아무튼 너하고 나하고 냇가에서 미꾸라지 잡는다고 멀쩡한 소쿠리 다 버리고 네 어머님께 꾸중 듣던 일. 그래, 2학년? 아냐. 3학년이면 어떻고 5학년이면 어떠냐?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또 소쿠리 가지고 냇가로 갈까? 야, 벌써 나는 수백 번도 더 갔다, 허, 허… 우리 멋있는 다방에 가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싶었었지. 그랬어, 언제였지? 아마 결혼하고 몇 년 지나서였을 거야. 아무튼 그래. 그러다 어느 커피숍에 들렀다가 너무 비싸 그저 나와 버린 적 있었지. 그래, 그런데 그때 커피 값이 얼마였지? 모르겠는데…
연대기를 기술하면 모든 일어난 일들이 다 거기 모여 그 일들이 뚜렷하게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그것을 서술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자상한 연대기를 기술하다보면 어쩌면 일어난 일들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모두 달력의 낱장이나 시계의 시침에 매달려 조각조각 흩날릴지도 모릅니다.
삶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아니, 삶은 어떻게 기억되는 것일까? 이름에 담기는 얼굴일까, 아니면 얼굴을 가리는 이름일까?
대체로 남자 제자들은 재미가 없습니다. 겨우 찾아와 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천하대사를 논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여자 제자들은 만나면 즐겁습니다. 사는 이야기를 마치 친정아버지 대하듯 도란거립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어미 된 녀석이 요전에 와서 애비를 한껏 비난하고 갔습니다. “글쎄, 결혼한 지 겨우 만 4년인데, 벌써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려요? 대학 3학년 때부터 연애했으니까 벌써 우리 관계가 9년째예요. 그런데 이제는 실망뿐이에요.”
‘아이만 없으면….’ 하는 소리가 곧 나올 것 같아 제가 서둘러 말을 끊었습니다. “야, 이 녀석아, 네 신랑이 결혼기념일은 잊어버려도, 내 짐작에 결혼했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는 것 같으니 참 다행이다. 기억할 것만 기억하면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좋은 거야.”
훈수가 되었는지 절망을 안겨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제 기억상실증을 아끼고 싶습니다. 고약한 독선인 줄 알면서도.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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