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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정진홍   |  2005-10-14 13:35:32  |  조회 2240 인쇄하기
아이를 낳으면 아주 좋은 애비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떤 것이 좋은 부모일까,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아내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생각하는 것이 퍽 달랐습니다. 그래서 다투기도 했고, 서로 이해하기 위한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 '자식'에 대한 ‘꿈’이 서로 다른 것은, 그러니까 어떤 '어버이'가 되고 싶다는 부모에 대한‘상’이 다른 것은, 서로 자란 과정이 달랐던 것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정직’하고 ‘절제’하는 아이로 자식을 키우는 애비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제 선친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좀 억지를 썼습니다.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다 먹이지도 않았고, 입히고 싶은 것을 선뜻 마련해 입히지도 않았습니다. 장난감을 넉넉히 사준다는 것은 아예 사치라고 여겨 네 살이 될 때까지 열두 토막짜리 집짓기 한 벌과 끌고 다니는 나무로 만든 조그만 자동차가 고작이었습니다. 하기야 살림이 넉넉지 않아 그렇게 밖에 해줄 수 없었던 것이었으리라고 지금은 회상합니다만 아무튼 그 때 저는 그렇게 하는 일을 철저하게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애비 노릇을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했습니다. 아이가 잘 ‘따라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하자 사태는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아이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부러워하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막무가내였습니다. 애비의 권위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저는 조심조심 귀한 유리그릇을 옮기다 덜컹 떨어트려 그만 낭패를 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말아야지! 저는 그렇게 마음먹고 장난감을 사주기 시작했습니다. 힘 든 일이었습니다. 새 장난감의 효용은 불과 몇 시간, 친구들 앞에 가서 자랑을 하는 경우조차 하루를 넘기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뉘엿거리는 저녁 퇴근길에 저는 제 아이가 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친구가 부러워 문간에서 맥없이 쭈그리고 앉아 그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벌써 여러 번 같이 놀자고 애원했는데도 거절당한 서글픔이 그대로 읽혀졌습니다.

마침 황혼이었습니다. 제 긴 그림자가 자식의 무릎 앞에서 멈추어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제 그림자의 움직임을 인지하게 하는데 별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틈에 우리는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머리를 밟히지 않으려고 앉고 서는 일을 잽싸게 반복했습니다. 아이도 그랬습니다. 담장 그늘 뒤에 가면 그림자가 온통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몸은 숨겼는데 그림자를 보고 숨은 아이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자식도 배워 그렇게 했습니다. 채 산등성이를 넘어가지 않은 해를 바라보면 내 앞에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는 것, 그림자는 빛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 등등, 우리는 그림자밟기를 하면서 많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놀이를 얼마나 자주 하며 지냈는지, 그 놀이가 자식의 장난감 결핍증을 얼마나 보상해주었는지, 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자식이 그 놀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놀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얻었는지 가늠할 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기억하는 것은 어느 날 잠자리에서 작은 녀석이 묻던 물음입니다.

“그림자 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럼. 모든 것은 다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 햇빛을 등지고 있을 때는 말야!”

“그림자도 무거워?”

“그럴 수 있지.”

“그림자도 찢어져?”

“그럴 수 있지”

“그림자도 웃어?”

“그럼, 그럴 수 있지!”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실체와 그림자, 실상과 허상, 허상의 실재성, 그림자의 존재론......어쩌면 이 이야기를 자식과 이어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는데 자식에게 회상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 슬픔을 견딜힘도 이제는 저에게 없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시내에 다녀 오늘 길에 자식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옆을 지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황혼이었습니다. 단지 옆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그네, 미끄럼틀, 시소들 틈에서 키가 커다란 애비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그림자밟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식이었습니다.
“고맙다!” 저는 그렇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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