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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물음’ 아닌 ‘내 물음’ 일깨워
살면서 자기가 묻고 싶은 것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저는 대학이란 그러한 곳이리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허망한’ 꿈이었습니다. 묻고 싶은 것을 묻는 일은 뜻밖에 어려웠습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했다 해도 좋을 듯합니다.
지금은 그 경험이 철저히 제 어리석은 무지 탓이라고 여깁니다만 그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릇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적어도 자기가 겪는 삶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얼마든지 ‘스스로 물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내가 사는 것인데,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로부터 비롯하고 나에게 귀결하는 것일 터인데, 그렇다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문제자체를 투명하게 하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한 해답 이전에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나 물음을 ‘배워 묻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대학은 ‘내’가 ‘내 물음’을 자유롭게 묻게 하기보다 물어야 할 물음과 물어서는 아니 될 물음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은 '준비된 물음'을 가르쳤고 저는 그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마침내 물음을 배워 가르침 받은 물음을 ‘바로 그것이 제 물음 입니다’ 하고 발언하게 되면 ‘그것 봐, 그것이 네 문제야!’하는 반응이 일었고, 이어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기막히게 포장되고 다듬어진 모습으로 우아하게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가르치시는 분들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적 모험을 감행해라. 모르면 물어라. 물음은 부끄럽지 않은 거다. 그래야 큰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가르치는 물음을 잘 학습하도록 하는 레토릭이라는 것을 제가 터득하는데 별로 오래 걸린 것 같지 않습니다. 또 이런 말씀들도 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물은 것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네가 물은 만큼만 알 수 있다. 네가 묻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물음을 묻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 말씀들도 실은 자신의 문제를 이식(移植)하시려는 정교한 장치 같은 것이라는 것을 터득하는데도 별로 오래 걸린 것 같지 않습니다.
따는 생각해보면 그 가르침들은 한결같이 옳고 바릅니다. 실상 학문이라는 이름의 지적 노작들은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학문적인 탐구란 이미 해답을 생산한 물음을 학습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대학의 지적 풍토나 학문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어떤 삶의 모습만이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둘러보니 온통 인류의 문화라는 것이 그러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른바 지적(知的) 전통이란 축적된 해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해답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그 해답을 낳은 물음이 무엇인지 알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해답으로 점철된 문화가 곧 우리가 직면하는 지적 전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게 의미 있는 것, 곧 해답으로 승인하기 위해서는 그 해답을 출산한 모태로써의 물음을 알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따라서 학문의 자리가 물음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은 옳은 주장입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묻느냐 하는 것이 해답을 누리는 열쇠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음을 가르치고, 물음을 배워 묻는 학문의 세계는 ‘장엄한’ 권위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권위를 우러러 보았고, 그 그늘에서 내 성숙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삶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어떤 경험들은 마땅히 겸손해야 하고 순종적이어야 할 그 지엄한 권위 앞에서 저도 모르게 ‘배운 물음’이 아닌 ‘내 물음들’을 그 그늘에서 낳고 있었습니다. 역모(逆謀)를 꿈꾸는 태도라 해도 변명할 수 없을 이러한 모습이 저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스스로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서서히, 그리고 점점 짙게, 그러한 불경(不敬)한 사색이 저 자신의 정직성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이르렀고, 마침내 저는 저 자신의 물음이 지엄한 권위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힘’에 의하여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음험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 생각은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비롯한 오히려 ‘사실인식’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여겨지기조차 하였습니다.
그 상황은 유치하리만큼 단순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부활은 기독교만이 전유(專有)한 ‘사건’으로 가르쳐지는 정황에서 저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조천(朝天)의 기록이 왜 부활의 개념에 들지 못하느냐는 물음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묻는 것은 바른 물음이 아니야. 그것은 이단들의 질문이야!’
봉쇄당한 질문이 스스로 자자들 거라는 짐작은 불안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물음을 열어놓든지 아예 물음을 해체합니다. 한 번 일기 시작한 물음은 스스로 해답에 이르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계기에서 많은 물음주체들은 체념을 삼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더 부지런하게 ‘가르치는 물음들’을 배우려는 성실한 몸짓을 하게 됩니다. 생존의 긴박함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 그렇게 하게 합니다.
저는 많은 물음들을 그렇게 체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대학에서의 종교학 공부가 그러했습니다. 기독교를, 불교를, 유교를, 그리고 여타 종교들을 이미 발해진 그 종교들에 대한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물음을 배우면서, 그 물음들에 대해 이미 산뜻하게 마련된 해답들을 배우면서, 학습한 물음이 곧 내 물음이라는 자기 확인을 애써 다지면서, 그 물음 끝에 이르는 해답을 누리면서, 그렇게 종교를 ‘연구’했습니다. 저는 ‘진리’를 향해 그것을 얻고 그것에 이르려는 진지한 길 위에 있는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 의하여 인지되었습니다. 스승, 선배, 동료들이 칭찬과 격려와 선망의 눈으로 저를 부추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수록 저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무의식적인 자기기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자기기만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견뎌야 하는 고통보다 더 무서운 아픔은 없습니다.
‘특정 종교의 자기 설명의 논리로 인류의 종교경험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투의 내용을 읽은 경험은 저에게 ‘개안(開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의 <종교사론(Trait? d'Histoire des Religions 1949,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1958, 종교형태론, 1996)>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1959년 가을 일입니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지내다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그 책에서 종교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기독교나 불교를 말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그의 이 저서를 통하여 특정종교를 이야기하지 않고도 종교를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마치 ‘성상파괴(iconoclasm)’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음학습의 규범이 벗겨지고 나 자신의 정직한 물음을 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식을 위한 ‘다른 범주’의 출현, 그것은 다른 물음과 다른 해답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확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의 몸마저 떨리는 두근거림을 겪었습니다. ‘치사하지’ 않게, 그래서 정직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새로운 지평의 전개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단(異端)은 ‘학습된 물음의 노예’이지 않은 한 실재하지 않습니다.
흔히 지금 말씀드린 그러한 투의 논리를 펴면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개개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고 인류의 종교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곧바로 ‘보편과 특수’의 척도로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주장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른바 ‘보편과 특수’는 우리가 익히 학습해온 ‘배운, 전승된, 이미 규범화된 물음’에서 가능한 매우 도식적인 범주입니다. 그러나 엘리아데는 보편과 특수의 개념이 아예 도출되지 않을 ‘다른 물음’을 묻습니다. ‘왜 인간은 사물을 보편과 특수의 범주를 전제하고 이해하려 하느냐?’하는 물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것을 아예 무시하고 다른 인식범주를 예상할 수는 없는 것이냐?’고 묻는 물음이라고 해도 옳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종교들’을 서술하는 그의 앞의 저서는 ‘엉뚱한’ 장절(章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힌두교, 이슬람,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주요개념들은 이러합니다. 히에로파니(hierophany, 聖顯), 상징, 신화....
이 책을 만난 두근거림은 그의 다른 저서 ‘성(聖)과 속(俗): 종교의 본성, 1983(The Sacred and the Profane: The Nature of Religion, 1959)을 읽으면서 꽤 차분해질 수 있었습니다. 성과 속을 인류의 문화를 읽는 새로운 서술범주로 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읽혀지는 인간의 삶은 일상성과 비일상성, 사실과 의미, 실재와 상상 등으로 겹겹이 첩 쌓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면 이 모든 중첩성을 담은 성과 속은 단절된 대립개념도 아니고, 두 다른 실재의 변증법적 전개를 서술하기 위한 분리개념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대로 실재를 묘사하는 현상학적 개념입니다. 종교를 그는 그렇게 읽어갑니다. 따라서 인류의 문화는 종교를 따로 마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겹쌓인 삶이 곧 사람살이인데 그 두드러진 모습을 종교라 이름 지은 것은 매우 후대의 분석적 인식 틀이 낳은 편의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종교 아닌 것도 없고 종교인 것도 없습니다. 종교란 인간이 다만 종교적인 존재(homo religiosus)로 읽히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어일 뿐입니다.
특정 종교의 울이 분명한데도 저는 그의 저서에서 저 자신의 물음이 메아리치는 것을 겪으며 이 종교 저 종교 나들이가 얼마나 편했는지 모릅니다. 특수성이 사라진 보편성의 자리에 들어선 것이 아닙니다. 그 범주가 전혀 ‘무의미’해지는 다른 삶을 겪는 자유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기독교는 기독교다워서 좋고, 불교는 불교다워서 좋다고 말씀해도 되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사람들의 현실과 꿈, 동서고금을 막나한 인간의 현실과 꿈을 넘나든 흥분을 지녔었노라고 해도 괜찮을 듯합니다. 아예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교를 묻는 것은 인간을 알기위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저 자신의 물음에 정직하려는 ‘욕심’을 채우고도 남은 책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영원회귀의 신화(Le Mythe de l'?ternel retour, arch?types et r?p?tition, 1949, Cosmos and History: The Myth of Eternal Return, 1952, 우주와 역사: 영원회귀의 신화, 1975)’입니다. 저는 퍽 오래 전부터 ‘역사’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누가 ‘역사!’라고 발언만 하면 꼼짝 못하고 마는 것이 근대 이후의 인간의 의식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역사적 진실, 역사의 심판, 역사의 증언, 역사의식, 역사적 진보, 역사창조 등등은 근대 이후 인간의 인식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입니다. 그것은 근대 이전의 신적인 존재(divine being)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역사는 현대의 신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고, 역사주의는 현대의 종교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역사학자들은 모두 현대의 사제(司祭)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왜 그런지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역사가 년대기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지닌 과거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의 구조라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책은 바로 제 물음, 감히 무식하고 의식 없는 자의 문제들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시간은 가역적(可逆的)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은 단절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간은 되 지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끝은 처음이고 처음은 끝이기도 하다고 하면서 역사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직선적 시간관을 부정해버립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또한 종교의 참 모습, 그러니까 인간의 삶의 참 모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아니오!’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닥칠까를 그는 모르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주의가 건재하는 한, 인간이 어떻게 시간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제가 이 책을 1975년에 번역해 출판했을 때, 어느 귀한 학자께서 친절하게도 이 책과 이 책을 옮긴 저를 당신의 논문 속에서 언급해주셨습니다. 대충 그 분의 논지는 이러했습니다. ‘엘리아데는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전근대적인 수구적 학자이다. 그의 주장을 좇는 사람은 매판적(買辦的)인 지식인이다.’ 그 분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물음을 정직하게 발언할 수 없게 하는 메커니즘은 학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엘리아데의 주장은 이런저런 비판 앞에서 상당히 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물은 물음은 저에게 학문의 정직성, 학문성, 아니, 학문한다는 인간의 삶, 그리고 도대체 인간에 관하여 정직할 수 있는 태도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늘 새삼 살펴보게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그가 왜 소설을 쓰고, 희곡을 쓰고, 그 여러 권의 자서전을 썼는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정직하게 학문하려는 몸부림이 그렇게 표현되지 않을 수 없음이 제 속 깊이 와 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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