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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존경하라는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당연한 인간의 도리로 여겨졌습니다. 논거는 여러 가지입니다. 오랜 삶을 통해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터득한 그 분들의 지혜가 우리의 삶을 위해 더할 수 없이 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그 분들이 온 생애를 기울이면서 우리의 삶을 따듯하고 넉넉하게 해주신 공덕을 감사하고 기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세월 따라 늙어 쇠약해지고 당신 자신들조차 추스를 수 없게 된 분들이기 때문에 잘 보살펴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노인을 귀찮고 짐이 되는 사람들로 여긴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절차나 방법이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고려장’으로 대표되는 ‘노인을 버리는 일’ 또한 인류의 문화-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노인들이란 생산적이지 못한데다 그와 더불어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하기조차 하는 그러한 존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인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는 인간의 삶 속에서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존경, 감사, 염려 등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자신이 이른바 ‘노인’으로 ‘대접’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러한 ‘노인존경의 문화’를 마땅한 것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노인이 되고 보니 그게 그렇지 않더군요.
우선 제가 존경받을 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지혜라고 여기지만 오히려 오랜 세월 살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고집을 지혜나 신념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생깁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이 저절로 지혜롭게 되는 것은 분명히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노인과 지혜로움을 등가화하는 것처럼 위험한 판단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늙어보니 겨우 알겠습니다. 그러니 노인은 지혜로운 어른이기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겁이 납니다.
노인이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 마땅하다는 가르침을 들어도 어색하고 민망합니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과 나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덕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꼭 같은 논리로 내 삶이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부덕한 것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끔찍해집니다. 감사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뭇사람들에게 감사를 해야 옳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늙었다고 무조건 감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새삼 절실해집니다.
노인들은 힘없고 무능력한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살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들을 때도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젊었을 적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노인이라는 사실 자체 때문에 노인은 염려와 보살핌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늙어보니 늙어 대접받는 일보다 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늙고 쇠약해진 것이지 그들이 그 책임을 질 까닭도 없는데, 그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몸 둘 바가 없습니다. 그것이 ‘자연’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돌보아주는 것을 굳이 신세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병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늙으면 어차피 남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늙어보니 그것도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하기야 저처럼 못난 사람이 아니라면 존경과 감사와 보살핌을 당당하게 요청하면서 노년을 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이 참 부럽습니다. 하지만 노인이라는 것이 그것 자체로 무조건 존경과 감사와 염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럴 수 있는 노인다움을 스스로 지니고 있어야 하고,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 편히 늙은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이미 다 늙어 이러나저러나 바로 그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과 경멸을 엮어가며 사는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젊은이들에게, 아직 늙지 않았지만 서서히 늙어가는 이들에게, 해야 할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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