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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 이야기
정진홍   |  2005-10-14 13:39:16  |  조회 2334 인쇄하기
보자기 예찬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주머니보다 훨씬 자유롭게 사물을 한데 모아 쌀 수 있는 그 넉넉함을 칭송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넉넉한 데 비하면 아무 것도 담아 싸지 않을 때는 아예 스스로 전혀 없는 듯이 있는 것이 보자기라는 설명도 곁들여 있었던 듯합니다. 차곡차곡 접어놓으면 아무리 커다란 짐을 싸는 보자기라 할지라도 호주머니에 넣을 정도로 작고 납작하게 되는 것을 들어 그러한 묘사를 했었던 듯싶습니다.
꼭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그 글을 읽기 훨씬 이전부터 보자기를 보면 공연히 뿌듯해지곤 했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암담하고, 지닐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다고 느끼며 살았을 때도 보자기는 그대로 위안이었고, 꿈이었고, 풍요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에서 저는 보자기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라고는 호미자루도 쥐어보시지 않은 어머님께서 집안 어른 댁 뽕나무 밭 사이에 깨를 심으셨습니다. 흙을 부드럽게 해주고, 잡풀을 뽑아주고, 적당히 물 주고, 거름 주면 농사란 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신 어머님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뽕나무 밭에서 사셨습니다. 아직 어렸지만 그러한 어머님이 제게는 참 안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전쟁이란 대동지환(大同之患)이니 홀로 비탄에 빠져들고, 절망하고, 사는 데 아예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당신이 우리 남매들에게 늘 하신 말씀이셨지만 남편도 친정아버지도 친정 동생들마저 한순간에 잃은 분이 하시는 말씀치곤 지나치게 냉정하셨다는 인상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머님은 그렇게 ‘깨 농사’를 지셨습니다. 그것을 타작하여 저는 어머님을 따라 십 리 길을 걸어 장날 장에 가서 그것을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두 되쯤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깨를 가지고 가려는데 밀기울이 담겨 있고, 도토리 주워 담은 자루 말고는 깨를 담을 자루가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광목 앞치마를 보자기 삼아 그 깨를 담으셨습니다. 저는 조심조심하며 깨 한 톨이라도 흘리지 않으려 손을 바꾸지도 않고 그것을 들고 그 길을 걸었습니다.
깨를 팔아 어머님은 제게 검정 운동화를 사주셨습니다. 저만 읍내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나나 누이나 아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참 허탈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야말로 ‘피땀’을 흘리신 대가가 겨우 운동화 한 켤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마냥 즐거우셨습니다. 그렇게만 지금 기억됩니다.
그런데 집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 산모롱이를 돌면서부터 어머님께서는 산에 버려진 죽은 나뭇가지들을 줍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 보자기 삼아 가지고 갔던 앞치마로 묶으셨습니다. 길거리에 새끼줄 한 가닥도 떨어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꽤 긴 가지들이 있어 삐죽삐죽한 나뭇단이 그래도 앞치마로 감아 꼭꼭 매듭을 짓자 짊어져도 괜찮을 만큼 앙그러지게 묶여졌습니다. 저는 그때 그렇게 매듭을 지으시는 어머님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저에게는 자꾸 온힘을 다해 꼭꼭 매듭을 지으시던 어머님의 손과 단단하게 묶여진 보자기 매듭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저녁에 공부를 하다 졸다가도 그 매듭이 떠오르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함께 놀러가자고 해도 그 매듭이 떠오르면 저는 어머님께서 매듭을 지으시듯 그렇게 그 제의를 단단하게 거절했습니다. 차츰 배고픔과 외로움이 가시고 절박한 삶이 조금씩 여유를 마련해가면서도 저는 보자기 매듭만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시골을 오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단단히 매듭이 지어진 보따리를 보면 가슴이 뜁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거기 무엇이 담겨 있는지, 보자기가 참 편한 도구라든지, 그런 것은 제 두근거림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매듭에 깃든 삶에의 의지, 그리고 꿈, 그리고 거기 응어리진 온갖 애환이 그대로 전해져오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월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저는 외국에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라이프 잡지에서 월남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미군들의 주민학살 사진을 커다랗게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사진에는 동네 사람들 남녀노소가 제각기 손에 손에 보따리들을 하나씩 들고, 아기를 안고, 그렇게 걸어 나오는 사진이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총격이 시작되면서 그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선명하지 않은 채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진은 죽어 널브러진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진에서 매듭이 꼭꼭 매어 있는 보따리들이 시신들 옆에서 버려져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무엇인지 보자기에 담아 꼭꼭 힘주어 매듭을 지었을 그 사람들, 삶에의 희망과 의지가 아직 그렇게 뚜렷한 매듭으로 드러났던 것이 바로 전이었는데, 이제는 그 매듭만이 여기 살아 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없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참 오랜만에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지금도 제게 보자기는 참 편리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매듭은, 여전히, 저리게 아픈, 그리고 그만큼 아름다운 꿈의 의지입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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