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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대체로 그러하지만 그 때는 학생들이 모두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익히 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랬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 아이는 교복을 입지 못하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이러한 일이 지속된 것은 아닙니다. 6.25전쟁 직후, 학교가 문을 다시 연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길어야 겨우 한 학기 동안의 일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복만은 반드시 입게 했습니다. 교육은 그렇게 같은 옷을 입히듯이 일정한 틀에 넣어 다듬은 모습으로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든지, 아니면 아주 좋게 말해서 교복을 입혀 어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게 해주려 했든지 했을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일제의 군국주의가 무의식을 물들여 아무 의도 없이 그렇게 옷을 통일하였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아이는 교복을 입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다니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 교복은 그야말로 사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복 아닌 옷이 넉넉했던 것은 아닙니다. 철 따라 바꿔 입기는커녕 같은 계절에서도 빨래를 해 입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정말 이상한 이야기로 여깁니다.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 ‘옷 고민’이 짐작이 되질 않으니까요. 물론 그 때도 어떻게 해서든 교복 한 벌 맞추면 그것이 교복을 입지 않는 것보다 훨씬 옷 문제를 풀어준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편하게 해주는 교복을 만들어 입을 수 없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어폐가 있습니다만 ‘다행히’ 그 아이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 말고도 서너 친구가 교복을 입지 못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한 학년 150명인 시골학교이었는데 아마 전교생 중에서 교복을 입지 못하고 학교를 다닌 학생은 모두 합해보아야 10명 남짓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아이는 이장계(異裝屆)라는 것을 담임선생님께 내고 허가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학생증과 이장 허가증이 함께 있었습니다. 교문에 들어설 때면 기율부(紀律部) 학생에게 그 증명서를 제시해야 했습니다. 수업시간마다 그 아이는 선생님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아이로 지목을 받곤 했습니다.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너그러웠지만 그 아이는 때로 ‘좋은 아이들’의 지나친 동정의 눈길을 피하느라 힘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래저래 그 아이는 점점 소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자신을 감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커다란 나무 둥치를 보면 자신이 그 몸통으로 스며들어 나무가 되어버리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밤이 온갖 것들이 제각기 제 모습을 지니고 온갖 채색을 한 채 자신을 드러내는 낮보다 얼마나 더 편한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교복만 입으면, 또는 교복 아닌 이 옷을 벗으면, 세상을 한꺼번에 넘어서는 ‘신나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강가에 나가 강물에 별이 비치는 시각에 그 아이는 옷을 하나하나 벗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가 마침내 교복을 입고 등교 한 날, 그가 무엇을 어떻게 겪고 지녔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 아이도 이제는 그 일을 되새김질 할 만큼 어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저도 그 아이에게 그 ‘상처’를 다시 덧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아내를 만났을 때, 그 아내는 저에게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정말 그 이야기가 이상한지 이상하지 않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의 아내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 남편은 아주 이상해요. 어렸을 때부터 친구간이니까 잘 아시겠죠? 아시는 대로 설명을 해주세요. 무어냐 하면요, 남편은 새로 옷을 사자고 하면 마구 화를 내는데 그 정도가 예사롭지 않아요. 일상 만나는 그런 남편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살림을 근근이 하는 터이니까 유행 따라 옷을 입는 투의 옷 낭비는 하지 말자는 것쯤으로 이해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좀 살만하게 되었는데도 옷을 사자면 화를 내는 수준이 점점 험해져요. 왜 제 남편이 이럴까요? 참 이상해요.”
그 아이를 만나 제가 물었습니다.
“야, 너 이장계 내고 학교 다니던 것 기억나니?”
“뭐, 이장계? 아, 맞다. 그런 일 있었지, 그래!”
그 아이는 까맣게 잊은 듯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야, 이 친구야. 네 안식구에게 그 이야기 좀 해라. 그렇지 못하면 넌 평생 중학교 1학년이야!”
몇 달 뒤, 우리가 만났을 때, 그 아이는 한창 유행하는 색깔의 말쑥한 콤비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아내로부터 더 이상 이상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제 가슴이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동안 그 아내의 이상한 이야기 때문에 조금은 가슴앓이를 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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