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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정진홍   |  2005-10-14 13:41:28  |  조회 2157 인쇄하기
스승 정진홍 한림대 교수, 제자 장석만 종교문화硏 연구위원

정진홍(鄭鎭弘·67) 한림대 특임 교수는 한국 종교학 연구의 1세대 학자로 평가된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정 교수는 1960년대 말 미국 연합신학대 유학 중 종교학자 엘리아데를 직접 대면하고 그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본격적인 종교학자의 길을 걸었다. 1982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종교학과에 재직하며 종교를 신앙의 대상에서 문화적 차원의 담론 대상으로 이끌어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종교문화의 전개’ ‘종교문화의 이해’ 등이 있으며 시집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 등도 펴냈다. 장석만(張錫萬·49)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개항기 한국사회 ‘종교’개념의 형성’ 등의 논문과‘종교다시 읽기’(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問 신앙과 종교학이라는 학문의 갈등은 없습니까

答 학문은 '答에 대한 성찰'… 종교는 '問에 대한 성찰'

문 인문학 지망하는 학생들이 계속 줄어들어요

답 계산만 하고 재는 삶은 이미 젊음이 아니지

문 상상력과 종교는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나요

답 경직된 문화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어 주지

문 종교사의 변화를 읽지못해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답 정치도 종교화… 맹목적인 광기로 善惡 판단해

장석만=선생님께서 최근에 쓰신 글에서 ‘인간의 삶은 홑겹이 아니라, 겹겹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정진홍=사실과 의미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사실에 매몰되어 의미를 잃든가 일상성 속에 함몰된 채 비일상적인 어떤 것을 잊곤 하죠. 예를 들어 종교는 비일상적인 주장으로 구체화된 문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을 투과하는 깊은 차원에서 의미를 담고 있죠. 보통 우리는 일상을 평면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덜커덩 일상이 흔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여태까지 묻지 않고 살아온 삶에서 벗어난 낯선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익숙하지 않은 물음이 초래하는 답변이 곧 신비에의 어떤 낌새, 다시 말하면 결코 홑겹이 아니었구나 하는 터득이죠.

▲장=선생님께서는 상상력에 대해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고 계십니다. 종교의 영역에서도 그러하고 공부의 영역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허구적인 것을 떠올려서인지 상상력과 종교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우리는 신앙, 이성, 감성 등으로 삶을 재단하고 각기 절대적인 실재인 양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은 맹신으로, 학문으로 독선으로, 감성은 도취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러한 서술범주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하고, 그러한 분류개념을 재성찰해야 합니다. 나는 상상력이 기계적으로 경화(硬化)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지평과 서술범주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럴 때 삶은 훨씬 열려진 호흡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말씀하신 경화된 문화라는 것에 대해 특히 종교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리라는 것이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라면, 불변이라는 의미에서 경화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요?

▲정=진리는 사물이 아닙니다. 하나다 둘이다 하고 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진리는 초시공적인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삶의 자리에서 창조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마치 진리를 사물처럼 전제된 것, 도달해야 할 것, 소유해야 할 것 등으로 말합니다. 때로 학문의 태도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진리는 이미 죽은 진리입니다.

▲장=선생님의 종교학에서는 제발 전통별로 종교 연구하지 말자고 하십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전통에 따라 종교를 연구할 경우, 많은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종교전통에 따른 연구에서 벗어나자”라는 것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요?

▲정=물론 전통별 종교연구는 필수적이고 중요합니다. 가장 구체적인 역사현상이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연구가 지닌 그늘도 유념해야 합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종교별 연구는 특정 종교의 자기주장의 논리를 진술하는 것으로 일관하면서 갈등을 내장할 수밖에 없었고 주로 사상사나 교리사 위주로 기술되어 종교문화를 총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무엇이 기독교인가, 불교인가를 묻기보다 왜 인간은 종교적이게 되고 하필이면 불교인이고 기독교인이 되는가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도 역사현상이고 문화현상이라는 인식을 기초로 하지 않고는 현대의 종교문화가 보여주는 고전적인 종교개념의 몰락과 새로운 ‘구원에의 희구’라는 문화현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장=종교학을 연구한다면 ‘믿는 신앙이 무엇이냐’ ‘신앙과 학문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개신교 신앙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신앙과 종교학이라는 학문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정=학문의 배후에는 학문을 학문이게 하는 비학문적 실존적 모티브가 있습니다. 신앙의 배후에는 신앙을 신앙이게 만드는 비신앙적인 인간적 고뇌가 있죠. 종교학과 기독교는 그러한 내 모티브와 고뇌가 선택한 내 삶입니다. 결과적으로 학문은 ‘해답에 대한 성찰’이어야 하고, 종교는 ‘물음에 대한 성찰’이어야 합니다. 둘 사이에 갈등은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은 학문을, 학문은 신앙을 더 확장하고 심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은 내게 ‘지적 정직성은 종교적 봉헌 속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장=현재 한국의 종교현실에 대해 학계의 자세나 사회의 일반적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우리 학계나 사회는 경험을 표출하고 기술하는 데 정직하지 못합니다. 전통 종교의 끈질긴 지속, 지배종교의 교체 등의 역사적 기억,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 종교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현상, 그리고 현존하는 다종교 상황 등을 몸으로 겪으면서도 종교들은 여전히 배타적 자기 절대화 속에서 타자의 현존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종교나 학계의 이러한 자기기만적 태도는 종교문화 전체를 ‘병든 문화’이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학은 종교문화에 대한 문화비평적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종교를 해체하려는 것도 아니고 특정 종교를 고양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장=최근 선생님께서 종교사의 흐름을 ‘종교의 시대’ ‘종교들의 시대’ ‘종교적인 것의 시대’로 구분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오해의 많은 부분이 이런 변화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좀더 설명을 해 주십시오.

▲정=단일한 ‘종교’만을 인식하던 의식으로 ‘종교들’이 공존하는 다종교현상을 기술하고 판단한다면 이미 그 자체가 오류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들의 배타적 독선이며 여기서 오늘날 종교가 원인을 제공하거나 정당화하는 살육까지 자행됩니다. 이제 우리는 ‘종교들’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언어로 ‘종교’를 발언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고전적인 종교개념이 무색할 만큼 ‘종교적’인 현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종교화’도 그 하나입니다. 요즘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을 판단하는 정치언어는 고전기의 종교언어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호해야 할 진리와 척결해야 할 비진리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돈독한 신앙이란 맹목적인 광기와 실은 표리(表裏)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광기 가득한 근본주의의 숲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서술범주의 새로운 구축, 물음틀의 새로운 구성이 이뤄져야 합니다. 종교, 종교들, 종교적인 것들의 구분은 이를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장=인문학을 지망하는 학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의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종교학에 관심 있는 학생 그리고 인문학에 뜻을 두고 있는 학생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저는 인문학을 ‘기본적 학문’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기본’ ‘기초’라고 하면 왠지 초반 일정기간만 배우고는 ‘졸업’할 대상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근원적인 것을 천착하는 ‘일상적인 학문’으로 인문학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젊음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삶은 의외로 높고 깊고 넓습니다. 아무리 부지런하게 살아도 모자랍니다. 약삭빠르게 계산하고 재는 삶은 이미 젊음이 아닙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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