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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의 끝자리
정진홍   |  2005-10-14 13:42:36  |  조회 2021 인쇄하기
새벽 3시에 일어나 108배 예불을 하고 2시간동안 참선을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초겨울인데도 땀이 났습니다. 다리도 후들거렸습니다. 함께 간 학생들은 졸음을 이기는 일이 힘들었다고 했지만 저는 서고 앉기를 백번 넘게 하는 일이 더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산사에서 열흘을 보냈습니다. 스님들 사시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공양을 하고, 설법을 듣고, 이런 저런 노동을 하고, 저녁 9시에 잠들기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참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선은 모든 생각을 끊고 떼어버리는 일이니, 참선할 때는 무상무념의 경지에 들도록 해야 하느니라.” 저는 스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힌 잡다한 일들 때문에 마음이 한 순간도 편하지 않은 터에 이 기회에 모든 생각을 떨어버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듯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한 평생 그렇게 선을 수행해도 마음을 비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분들이 흔치 않다고 들은 터에 열흘 동안 참선을 한다고 생각의 얽힘이 풀리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태는 예상외로 펼쳐졌습니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깊은 고요함 속에서 무념무사를 향해 온 마음을 쏟으려는데 생각이 잠잠해지거나 사라지기는커녕 평소에 생각지도 않던 갖은 자질구레한 생각들마저 꼬리에 꼬리를 이어 솟아오르는데 그 봇물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다듬지 못한 이런저런 일들, 내일 해야 하고 모레 해야 하고 하루하루 이어 해야 할 일들이 왜 그리 쌓여있는지요. 섭섭하고 미운 얼굴들은 왜 그리 또 많이 나타나곤 하는지요. 염려되고 걱정되는 일들은 왜 그리 끝이 없는지요. 참선은 생각을 지우는 시간이 아니라 온갖 생각을 한꺼번에 넘쳐나게 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기를 몇 날 하더니 생각은 여전히 소용돌이치는데 그것이 첫날 같지 않았습니다. 뭐라 할까요. ‘고요한 소용돌이’라고 하면 될는지요. 솟아나는 생각들이 차츰 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어쩌면 생각이 지금 여기 일들을 벗어나 아득하게 잊었던 옛 일을 떠올리게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분명할 듯싶습니다. 산사에 머물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새벽 참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먼 옛날에 서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날이 차고 바람이 귀를 에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저는 눈밭을 헤치면서 산에 올라 솔가지들을 쳐서 땔감을 마련하곤 했습니다. 그 날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참나무 가지를 치면 숯도 만들 수 있어 그 날은 참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그 가지들을 치기로 했습니다. 마침 초등학교 4학년짜리 누이가 따라나선다기에 나무 위에 올라 처 내린 가지들을 한데 모아 놓도록 심부름을 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러자고 했습니다.
나무에 올라 제법 굵은 가지를 처 내리는 일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손은 얼어 낫 쥐기가 힘들고 나무 둥치는 미끄러웠습니다. 아래 가지를 밟고 윗가지를 한 손으로 쥔 채 낫질을 하는 일은 제게 벅 찬 일이었습니다. 팔은 아파 끊어지는 듯 했고, 땀은 비 오듯 흘렀습니다. 숨이 찼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나무 아래 있는 누이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큰 가지도 끌어 모아 놓고 자디잔 가지들도 다 긁어모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도 훨씬 넘게 나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오자 손발이 모두 떨렸습니다. 갑자기 운동을 멈추자 추위가 땀으로 젖은 옷들을 얼듯이 차게 했습니다. 그런데 누이는 작은 나무 한 가지도 모아 놓지 않은 채 눈 속에서 꼼짝 않고 서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순간 화가 났습니다. 오라비는 이렇게 땀에 젖고 손발이 떨릴 정도로 애를 쓰는데 밑에서 나뭇가지 모으는 일도 하지 않고 서있는 누이가 괘심했습니다.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소리를 쳤습니다. 누이는 입술을 달달 떨며 “추어서 그래”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벌써 눈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먹으로 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그 깐 추위에 꼼짝 못하면 아버지도 안계신데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하고 저는 말하며 또 한번 주먹을 흔들었습니다. 누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를 원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누이의 신발은 눈 속에서 흠뻑 젖어 얼어 있었습니다. 손도 뺨도 발갛게 얼어 있었습니다. 누이는 그렇게 울면서 장갑도 없는 곱은 손으로 나뭇가지들을 집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틈에 스님들도 학생들도 모두 일어나 나가고 저만 앉아 있었습니다. 가슴이 저리게 아파왔습니다. 까맣게 까맣게 잊었던 일입니다.
이제는 쉰이 넘은 누이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잘못 했네” 그렇게 속으로 말하면서 말입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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