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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낸 편지
정진홍   |  2005-10-14 13:43:01  |  조회 2033 인쇄하기
연말에 오래전 먼 나라로 간 친구한테서 메일로 연하장을 받았습니다. 친구라고 했지만 이 표현은 제 친구들을 가끔 곤혹스럽게 만들곤 합니다. 제가 관계를 맺었던 동료나 손아래 사람들을 저는 모두 친구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전혀 의도적인 것은 아닌데 그렇게 부르고 싶고, 정말이지 우리 관계가 친구인 것 같아 그렇게 부르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아주 고약한 모양입니다. 한번은 제 손자를 이야기하면서 “요즘은 그 친구하고 베게싸움을 하는 게 사는 낙이라네!” 했다가 친구들한테 온갖 모진 욕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콩가루 집안이군!”하는 것이 그 여러 비난과 질책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윗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친구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친구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이 친구도 실은 오래 전에 제 제자였던 여자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마찬가지로 제가 사려 없이 내뱉는 언어라 해서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것인데 아직도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선생으로 학교에서 산 것이 평생이고 보니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저보다 아래인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세월이 아무리 지나 그 친구들이 제법 어른 구실을 하고 사회에서 중책을 맡아 지내고 있다하더라도 제가 그 아이들을 호칭할 때 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남들에게는 무척 건방지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마치 손자를 친구라 했다가 야단을 맞은 것처럼 꽤 중하고 높은 직위에 있는 제자를 만나 예사롭게 반말로 지껄이다가 같은 자리에 있던 친구한테 어찌나 야단을 맞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제가 자리를 살피지 않고 결례를 했던 것만은 틀림없는데, 조금은 떨떠름했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는 제가 쉽게 잊을 수 없는 몇 되지 않는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조금 지나치게 분석적이다 싶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의 언행이 가끔은 따지고 대드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확인하면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그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이견을 받아드리곤 했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그러한 그 친구의 ‘들고남’이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연애도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도 철저하게 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외국으로 갔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자기도 남편도 모두 학위를 했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직접 들은 것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한테 들은 바로는 그야말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아이를 잊어갔고, 그 친구도 그렇게 사느라 바빴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여름에 저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였는데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고 아팠습니다. 잃은 아이가 세 아이들 중 가운데 딸아이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자신만만하고 쾌활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사뭇 떠올랐습니다. 위로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만 해가 저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메일을 받은 것입니다.
그 친구아이의 편지는 이러했습니다.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선생님.
밤에는 잘 주무세요. 꿈도 꾸지 마세요.
그래야 새벽에 가볍게 일어나실 수 있어요.

새해가 오는데
맑게 살아주세요. 따듯하게 살아주세요.

무조건 건강하셔야 해요.
절대적으로요.

행복하셔야 해요.
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제일 싫어요.
행복하실 거죠?

안녕히 계세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어느 틈에 저는 그 친구에게 답 메일을 쓰고 있었습니다.

친구야.
밤에는 잘 자거라. 꿈도 꾸지 말거라.
그래야 새벽이 가볍지....

새해가 오는데
맑게 따듯하게 살 거라.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

행복해야 하고....
너 불행한 것, 나 못 본다.
행복할 거지?

잘 지내 거라.

그러나 이렇게 써놓고 아직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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