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핵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는가. 한·미동맹에 관한 불협화음은 해소했는가. 김영희 대기자가 제주 신라호텔에서 제3회 제주 평화포럼에 참석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및 잭 프리처드 전 대북협상 대사와 긴급 좌담을 하고 민감한 시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197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 출신인그레그는 주한 미국대사(1989∼1993)를 거쳐 현재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으로 계속 한국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인 잭 프리처드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 담당 선임국장을, 아들 부시 정부에서 2003년 8월까지 대북특사를 지냈다. 지금은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김영희=먼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부터 들어볼까요.
그레그=대체로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분위기도 좋았어요. 적어도 말이 많았던 2001년 3월 김대중-부시 회담보다는 나은 회담이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미국은 당초 정상회담을 서둘렀는데 한국 측의 요청으로 회담 일정이 늦춰졌다고 해요. 노 대통령이 사전준비를 충분히 해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는 얘기죠.
프리처드=이번 정상회담의 점수를 매기자면 A마이너스 정도는 됩니다. 서울과 워싱턴은 이번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해요. 정상회담 목표치를 가급적 작게 잡고 그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한 거죠. 다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 강화 같은 원칙적 문제에는 합의했지만 그 밖의 북핵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법에 관한 구체적인 메시지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김=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두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고 언급한 게 마음에 걸리는데요.
프리처드=그 말은 '양국 간에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합의된 것은 아니다. 또 양국이 모든 사안에 걸쳐 100% 견해를 같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동맹국으로서 힘을 합쳐 문제를 차분하게 해결해 나가자'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 실용적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해요.
그레그=동감입니다. 북핵 같은 특정한 이슈를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건 난센스예요. 한국과 미국 모두 주권국가입니다. 서울과 워싱턴이 모든 이슈에 똑같은 견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자연스럽지도 않아요. 가까운 동맹인 미국과 영국도 모든 문제에서 견해가 일치하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김=두 정상은 전략적 유연성과 동북아 균형자론을 포함한 한.미동맹의 구체적인 문제는 앞으로 있을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계속 논의하는 쪽으로 정리하고 북핵문제에 논의를 집중한 것 같습니다.
프리처드=과거에 백악관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그 점은 이렇게 설명하고 싶어요. 정상회담을 50분간 한다고 해도 실제 대통령이 발언하는 시간은 12분50초가 고작이에요. 부시 대통령은 한국말을 못하고 노 대통령은 영어가 안 되니까요. 따라서 통역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실제 발언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가장 중요한 한두 가지 이슈를 집중 논의하고 자리를 옮겨서 확대 정상회담에서 그 밖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짐작건대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대통령집무실에서는 북핵문제를 논의하고 오찬 때 동맹문제를 논의했을 거예요.
김=부시 대통령이 당초 정상회담 배석자 명단에 없었던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배석시킨 의도는 무엇일까요. 미국도 지금부터는 대북정책에 한목소리를 내겠다는 신호일까요.
프리처드=그건 너무 낙관적인 해석 같네요. 내가 보기에는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미국 대통령에게는 국방부가 추진하는 '작전계획5029' 같은 것도 중요하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럼즈펠드를 배석시켰을 공산이 커요.
김=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한.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두고 평양에서 취재 중인 미국 ABC방송 기자에게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이고 핵을 더 만들고 있다고 말했어요. 김계관은 이 시기에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레그=김계관의 발언 내용은 내가 지난해 8월 평양 방문 때 그들한테서 들은 얘기와 똑같습니다. 그때 나는 그들의 메시지를 백악관에 전달했지만 백악관은 그걸 무시했어요. 미국이 북한의 메시지를 묵살하자 북한은 이번에는 ABC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미국인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한 겁니다. 나는 백악관이 최근에 와서야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이 치르게 된 정치적 대가가 어떤 것인가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김=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핵 보유를 저지하겠다는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프리처드=그렇습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아직 북핵 게임을 끝냈다고 생각지 않는 게 문제죠.
김=북한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데요.
그레그=평양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미국이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입장을 재차 강조했으니까요. 또 부시 대통령이 남북대화와 개성공단, 남북 철도연결 등 남북교류에 대해 지지를 표한 것도 북한에는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미국이 이번에 남북화해와 교류를 지지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프리처드=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부시 대통령과 한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했어요. 그건 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의 핵개발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찬동하는 발언을 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또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포함해 최근 두 번 연속적으로 김정일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불렀어요. 그건 평양이 서울을 통해 미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작은 증거로 볼 수 있어요.
김=그렇다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할까요.
프리처드=평양은 현재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등을 둘러싸고 베이징(北京)으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고 있어요. 또 식량사정도 나쁜 편이에요. 북한이 몇 주 내지 몇 달 안에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그러나 중요한 건 북한의 회담복귀가 아니라 앞으로 열릴 6자회담은 지금까지의 회담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레그=북한은 손에 핵이라는 새로운 에이스 카드를 들고 6자회담에 복귀할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핵 보유국이 된 만큼 미국.러시아.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자고 할 거예요. 도박에 비유하자면 판돈을 올리자는 거죠. 벌써 북한은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최근에 와서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얘기는 쑥 들어간 느낌입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부시 독트린의 옵션을 포기한 겁니까.
그레그=미국은 여전히 북한 핵시설 공격의 옵션을 확보하고 있어요. 1994년 1차 핵위기 때에도 자칫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할 뻔했죠. 다만 미국은 11년 전보다는 다소 현명해져서 선제공격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을 뿐이죠.
프리처드=펜타곤은 이미 내부적으로 대북 정밀폭격에 대한 모든 검토와 준비를 끝냈을 겁니다. 다만 한국의 동의와 부시 대통령의 재가라는 두 가지 걸림돌 때문에 실행을 못하고 있는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하려고 하면 당장 한국이 반대할 겁니다. 그리고 부시는 북한 핵시설 공격을 건의받으면 '정밀폭격으로 북한 핵개발을 100% 저지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 텐데 거기에 대한 대답이 쉽지 않아요. 군사적 옵션은 항상 테이블 위에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요.
김=한.미동맹이 약해서 한.미공조가 흔들리고 그래서 북핵문제가 안 풀리는 겁니까, 아니면 튼튼한 한.미동맹은 핵문제 해결조건의 하나에 불과합니까.
그레그=후자라고 봐요. 한.미동맹은 튼튼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백악관이 자신들의 체면과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과거의 레토릭에 발목이 잡혀 정책전환을 못하는 겁니다. 북핵은 장기적인 과제입니다. 길게 보면 한.미동맹은 미.일동맹보다 건강하게 발전할 것으로 낙관해요. 미국에는 일본보다 한국과 손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