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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땅’, 모잠비크
모잠비크는 ‘비극의 땅’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비참한 나라, 살육이 되풀이 되는 나라, 식민주의자들의 약탈이 거듭되는 나라, 문맹률이 70%가 넘는 후진사회.
그런 모잠비크가 달라지고 있다. ‘비극의 땅’에서 벗어나고 있다. “10년 전 만해도 모잠비크에는 파괴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지금은 경제성장으로 새 건물이 세워졌고, 사람들도 희망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수도 마푸토(Maputo)의 한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서방 인사의 주장이다. “내전이 한창일 때 항구 도시 베이라(Beira)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이웃나라 짐바브웨 군인의 호위로 통행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하루 수천 명이 이용하는 잘 포장된 도로로 변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경의로운 발전’의 실상
모잠비크의 발전상은 농촌에서 두드러진다. 고속도로도 건설하고, 카호라 바싸(Cahora Bassa) 수력 발전소의 전기로 농촌의 밤이 어두움에서 벗어나고 있다. 모잠비크 경제는 1996년 이래 연 8%로 성장했다. 이 곳 세계은행(World Bank)의 책임자 빈커트(Mr. Binkert)씨는 “경이로운 발전 이외에 다른 말이 필요 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물론 모잠비크는 아직도 가난하다. 그러나 지난 8년 사이에 전 인구의 69%가 넘는 절대 빈곤층이 54%로 감소했다. “내전기간 농촌 사람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집, 가축, 농토를 갖고 있다. 그들은 미래의 꿈도 갖게 되었다.”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발전에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외부 세계의 경제 원조가 한 몫 했다. 더 중요한 요인은 정부의 경제 정책이다. 전임 대통령 치사노(Joaquim Chissano) 때부터 “부패 근절, 빈곤 추방” 정책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고, 외국 자본의 유망 투자지로도 거명될 정도다. 치사노의 후임으로 현재 대통령직을 맡은 궤부자(Armando Guebuza)도 성장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전문가들을 경제 관료로 임명했고, 대통령 주변의 부패도 엄벌했다. 외국자본의 유치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으며, 외국인들에게 “인도양 연안의 찬란한 보석 모잠비크가 여러분에게 경제의 보고로 다가서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한다.
식민지 유산 청산의 통과의례
모잠비크만큼 식민지 유산의 청산이라는 통과 의례를 혹독히 치룬 나라도 흔치 않다. 모잠비크는 5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노예무역의 근거지였다. 1968년에야 마셀(Samora Machel)의 ‘모잠비크해방전선’ 즉 프레리모(Frelimo)의 좌익 게릴라 투쟁에 의해 독립이 쟁취되었다.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마셀은 맑스시트였다. 그는 국유화 정책, 자본가 추방, 공산당 일당 체제를 실시했다. 스스로 “아프리카의 지도자”로 자처하면서 이웃 나라인 로데지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지배체제를 공격했다. 이 나라들은 모잠비크의 다른 종족에게 ‘모잠비크 민족저항운동’, 즉 레나모(RENAMO)를 조직하게 했으며, 이를 지원해서 모잠비크를 내전상태로 몰아넣었다. 이 내란으로 100여만 명이 죽고 170만 명이 국외로 피신했다. 그러나 1983년 프레리모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마셀은 그의 “사회주의 정책이 공식적으로 실패” 했음을 사과했으며,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는 1986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모잠비크의 지도자들
마셀의 후임자인 치사노(Joaquim Chissano)는 레나모와 협상, 1990년에 신헌법을 마련했다. 다당제와 시장제도도 도입했다. 1992년에는 프레리모와 레나모 사이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졌으며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왔다. 2004년, 치사노의 퇴임으로 궤부자가 2005년 2월, 새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 물론 모잠비크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레나모의 세력도 만만치 않고, 식민지 자본가들도 남아 있다. 주요 수출품인 면화와 설탕의 국제시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빈곤 추방을 내걸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힘든 생활에 지쳐있다. 평균수명도 40세 미만이다. 개인당 GNI는 $210로 전 인구 2,000만 명이 가난을 벗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러나 "빈곤에서의 탈출"이 가져다 주는 성과가 이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모잠비크를 바라보면, 모든 잘못은 지도자에 있다는 것을,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한, 사람들의 고통은 줄어들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전쟁도 지도자의 연명을 위한 수법임을 모잠비크의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모잠비크의 지도자들 중에는 스스로 용서를 비는 이도 있었다! 수천만을 배고픔으로 내몰고도 자신의 잘못을 눈감고, 전쟁의 위협으로 권력 연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지도자야말로 민족불행의 씨앗이자 역사의 비극임을 모잠비크가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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