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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 회의’:아시아-아프리카인들의 오랜 꿈
진덕규   |  2005-10-14 13:46:20  |  조회 2423 인쇄하기
‘버릴 수 없는 꿈’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버릴 수 없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유럽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맞설 수 있는 “아시아-아프리카 연대”를 구축하는 것인데, 이미 50년 전에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Sukaruno)가 주도했던 ‘반둥회의(Bandung Meeting)’에서 표출되기도 했다.

동서 냉전기에 비동맹 제3노선을 다짐했던 ‘반둥 정신(Bandung Spirit)’이 바로 그 결정체였다. 당시 그 자리에는 인도의 네루(Jawaharlal Nehru),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중국의 주은래(Zhou Enlai), 이집트의 나세르(Abdul Nasser), 가나의 엥크르마(Kwame Nkrumah) 등이 있었다. 비록 그들의 꿈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버릴 수 없는 꿈’으로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되살아난 ‘반둥 정신’

지난 4월 말 반둥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모인 40여 개 국가의 정상들이 그 꿈을 되새기는 모임을 가졌다. 참석자들 중 일부는 이 모임을 단순히 '반둥 회의' 50주년 축하 모임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서구의 약탈에서 벗어나려는 아시아-아프리카인들의 열망을 안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아시아-아프리카가 함께 빈곤을 퇴치하고, 아시아-아프리카인들의 목소리를 모아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를 극복하려 했다.

사실 지난 50년 동안 아시아-아프리카는 ‘반둥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고난의 역정을 걸어야 했다. 이들은 후진적인 정치와 경제 문제로 인해 서구의 경제 원조가 절실히 필요했으며, 서구의 투자와 서구와의 교역에 의존해야만 생존과 발전도 가능했었다. 그러므로 미국이나 유럽과 각기 ‘돈독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처럼 친미적인 국가도 생겼고, 쿠바처럼 친소적인 국가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아프리카가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이들을 구속했던 냉전 체제도 사라져 버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이루어진 급속한 근대화가 경제적 기적을 낳게 되자 이들은 경제 협력의 절실함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둥 정신’이 되살아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협력 체제의 가능성

이제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목소리가 국제 사회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n)의 연설은 이를 반영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더 자유롭고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UN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강대국 중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라는 1945년 식 UN을 극복하고, 2005년 식 세계성이 반영되는 새 UN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아시아-아프리카는 50년 전의 그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지정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반둥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의 성공적인 근대화는 물론이고, 중국과 인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이 두 대륙 사이에서 협력 체제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아프리카의 한 정상은 “아시아-아프리카에 매장된 천연 자원은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점한다”면서 “아시아-아프리카가 협력한다면 미국 등 서구가 중개했던 다이아몬드나 금, 석유, 철광 등을 직접 교역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반둥 정신’의 실현일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진정한 협력 체제’의 성취

그러나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장도 있었다. 인도의 만모한 싱(Mamohan Singh) 수상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천연 자원의 생산자와 수요자로 직접 거래해야 한다. 더 이상 서구의 다국적 기업체에게 중간 역할을 맡겨서 그 이윤을 챙기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가 손을 잡고 그들의 폭리를 단절시키기로 하자. 그렇게 해야만 진정한 세계화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유엔의 한 기관은 양 대륙 사이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지금 동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는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원료의 주요 수요지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아시아의 직접 투자도 활발해졌다. 한 조사 기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중국이 아프리카에 직접 투자한 액수는 9억 달러를 넘어섰고, 인도는 우간다에 직접 투자한 국가 중 3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도요노(Yudhoyon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아시아와 아프라카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경제 협력을 “반둥 정신에 입각한 진정한 협력 체제의 성취”라고 주장한다. 이 협력 체제야말로 지난 150여 년 동안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착취했던 서구 제국주의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반둥 정신’의 궁극적인 승리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날이 와야만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도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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