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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민주주의와 글로벌리제이션
진덕규   |  2005-10-14 13:47:31  |  조회 2280 인쇄하기
지난 수요일 축출된 에콰도르의 전 대통령 루시오 구티에레스(Lucio Gutierrez)가 키토의 브라질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시위 군중은 국외 탈출을 막기 위해 브라질 대사관 정문을 봉쇄했지만 그는 결국 대사관 뒷문으로 빠져나가 브라질로 망명했다.

그를 축출시킨 문제의 발단은 대법원 판사 31명 중 27명을 자기 편 사람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이것에 항의하는 시위 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쏘았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사망했다. 흥분한 시위대가 수도 거리를 가득 메우자 그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의회가 그의 축출을 결의함으로써 그는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망명길에 오르면서도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절대로 국가의 재산을 도둑질하지 않았다. 나는 남의 재물을 훔친 적이 없다. 오히려 국고를 도둑질한 사람들에게 벌금을 매겼으며, 환수한 돈을 국고에 채워 넣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지난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구티에레스는 전체 유권자의 60%가 넘는 절대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당시 그의 인기는 끝이 없었다. 특히 에콰도르의 1300만 주민 중 400만 명이나 되는 원주민들이 그를 지지했다. 사람들은 45세라는 젊음과 가난한 사람들을 형제로 여기겠다는 그의 공약에 환호했다. 강한 좌파 지향성과 포퓰리즘적 선동, 특이한 웅변술 등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집권하면 사회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것이며, 부패도 일소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가진 자들의 재산을 환수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그는 외채와 누적된 정부의 재정 적자에 봉착하게 됐다. 진보 좌파의 정책을 추구하다가는 나라가 파산될 형편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했던 정부 보조금을 모두 폐지했으며, 석유로 벌어들인 자원을 외채 상환에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야 만 워싱턴과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의 참모들은 집권 초부터 부패에 연루됐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 치중했던 그의 노력 덕분에 지난 해 에콰도르는 6%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반면에 그의 대중적 인기는 5% 이하의 바닥권으로 추락했다.

이번 구티에레스의 축출 과정은 라틴 "아메리카 신드롬"의 일종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라틴 아메리카에는 좌파 정부가 속속 등장했다. 좌파 지도자들은 부패를 막고,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하며, 사회 정의를 확립하겠다고 공약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유고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네스토 거시너가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국가의 재정 상태가 파산 일보 직전이었던 현실이 그들의 공약 집행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급되었던 보조금을 중단하는 대신 기업가들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러한 정책은 자연히 가난한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지했던 지도자가 자기들을 배신하고 오히려 그들이 미워하는 기업인들을 지원한다는 사실 때문에 곧장 반정부 시위에 돌입했다.

이번 에콰도르 사태는 글로벌리제이션의 충격과도 연관되어 있다. TV 같은 방송 매체는 저발전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선진국의 풍요로움에 익숙하게 했으며, 소비 욕구를 충동질했다. 그들도 풍요롭게 살고 싶어 했고, 정부의 지원으로 빈곤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었다. 이들 사회는 외채 상환이라는 과중한 압력 아래 놓여 있었고, 이를 충당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가 파산될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푼 기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참으라고 달랠 수만도 없었다. 실로 선택의 길이 막혀 버린 셈이다. 그 결과 이들은 그들이 선출한 지도자가 연이어 축출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축출된 구티에레스를 대신해서 부통령인 팔라시오(Alfredo Palacio)가 권력을 잡았다.그러나 그 역시 자신이 에콰도르의 난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실감한 탓인지 곧장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선거를 공정하게 실시할 것을 공약하면서 국민들의 감정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헌법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에콰도르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글로벌리제이션의 충격이 빚어 놓은 것이라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는것 같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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