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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의 결과
지난 주말, 영국의 총선 결과가 알려졌다. 집권당인 노동당(Lab)이 644(총의석은 645석)석 중 35.2%를 득표해 356석을 확보하여 토니 블레어(Tony Blair) 현 수상의 집권 제 3기가 시작되었다. “영국에는 미래만이 있다. 과거는 없다!”라는 그의 주장이 실감나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승리의 순간, 그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공관 앞에서 그의 어린 아들 레오(Leo)를 안고 이렇게 말했다. “영국의 찬란한 미래에 모두 함께 참여 합시다!”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 승리했지만 지난 번 보다 47석을 더 잃었다. 그러나 보수당은 33석을 더 얻어 197석이 되었고, 제3당인 자유민주당은 11석을 더 얻어 62석이 되었다. 그 밖의 30석은 군소 정당의 몫이었다. 총 투표율은 61.3%였다.
물러나게 된 보수당 당수
이번 총선으로 물러나야할 지도자는 보수당의 하워드(Michael Howard)다. 그는 이번 총선에 진퇴를 걸었다. 그러나 그는 노동당의 3차 연임을 막지 못했다. 그는 당 대표 자리를 떠나야 한다. 물론 보수당의 일부 당원들은 EU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2006년 까지 그가 재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워드의 퇴장은 분명하다.
올해 64세인 그의 삶은 보수당 당수로는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유태인의 후예로 나치의 핍박에서 벗어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하워드는 영국 웨일스에서 출생, 캠브리지에서 수학했다. 대학 시절 보수당 학생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캠브리지의 보수당 학생회장이기도 했다. 의회로 진출한 뒤 보수당의 촉망받는 젊은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보수당 집권 당시에는 노동상, 환경상, 내무상 등 정부 요직을 맡았다. 그는 2003년에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반대당”, 즉 제1 야당의 당수로 선출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노동당에게 빼앗긴 정권을 탈환하는 데 그의 정치 생명을 걸었었다. 그러나 그는 패했고 당수의 자리를 떠나야 한다.
토니 블레어 수상도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의 승리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그것은 블레어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이다. 블레어의 이라크 파병은 영국의 국론을 분열시켰고, 그에게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경멸만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력은 이번 선거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는 노동당의 3 차례 연임 집권의 기록을 세웠다.
본래 그는 스코틀랜드 출생으로 에딘버러에서 학교를 나왔고,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의회로 진출한 것은 30세 때. 노동당에서 그의 성장은 눈부셨다. 예비 내각의 각료를 거쳤으며, 1994년에는 그를 지원해 준 당시의 노동당수 존 스미스(John Smith)의 급서로 당수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즉각 노동당의 전면적인 개혁 작업에 돌입했다. 좌익에서 벗어나서 중도 좌파로 당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당헌 제4조의 개정으로 “공유제 지향”에서 벗어나 시장주의로 선회했다. 노동당의 이러한 변화는 “새노동당(New Labour)"으로의 자리매김이었다. 1997년, 마침내 노동당은 총선에서 승리해 18년의 오랜 야당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는 43세의 나이로 1812년 이래로 가장 젊은 수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의 거취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그도 중도 하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야가 뒤 바뀐 선거 공약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노동당의 구호는 “개혁과 변화”였다. “우리는 노동 귀족을 추방할 것이며, 건실한 경제를 일구어 범죄를 줄이고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람들의 능력 발휘를 가로 막는 장벽을 걷을 것이며, 모두에게 더 올바른 기회를 제공하고, 규칙에 따라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빈곤, 연금, 교육, 보건, 핵 문제, 지방 정부, 이주자 등에 대한 정책 개선을 내걸었다. 심지어 400여 년 동안 보수 세력의 온상이었던 상원의 개혁도 약속했다. 여당이면서도 마치 야당과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보수당은 “더 많은 경찰, 더 깨끗한 병원, 더 낮은 세금, 규칙이 선 학교, 이주 금지, 시민 책임성의 강조”를 공약했다. 마치 자신들이 집권당인 것처럼. 그러나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다수의 영국인에게 노동당의 승리는 필연적이었다. 보수당의 오랜 타성, 즉 집권 여당이었던 시절의 그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인식 한계가 빚어놓은 결과는 보수당의 패배로 이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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