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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것 같지 않던 04년 한해가 끝내 저물고 카렌더는 그래도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는 05년 새해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구년에 지칠대로 지친 국민의 가슴은 아직 무겁기만 하다.
어려운 경제가 국민, 특히 서민층의 고통을 증폭시켜왔고 경제지표나 정부의 각종 낙관적 공약성 예측은 턱없이 빗나가 앞으로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지만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해볼 수 있는 물리적 계기는 새해가 아니겠는가?
통치자에게 국민이 바라는 염원은 한결같이 민생고 해결, 즉 경제의 회생일 것이다. 새해에는 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속에 새해의 소망스러운 국정운영의 방향을 대체로 다음과 같이 건의하고 싶다.
첫째, 대통령이 솔직하게 경제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민생고해결의 발목을 잡고, 별의별 억측만 무성하게 낳은, 이른바 정치적 색체의 4대 입법안 등 개혁입법추진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현실을 감안하여 시간을 갖고 국민의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시점까지 이를 뒤로 미루는 영명하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꼬여만 가는 경제의 재건을 위하여 전력투구하겠다는 뚜렷한 공약을 제시할 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투명하고 설득력 있는 시장 친화적 정책을 통해 투자를 꺼리는 기업으로 하여금 정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투자를 촉진케 함으로써 고용도 창출하고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회복해야 하리라 본다. 그러기위해서는 기업의 창의적 모험심을 저상시키는 출자총액규제는 이를 즉각 중단하는 등 기업 활동의 장애요인들을 제거하는데 정부의 역할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셋째, 위원회공화국이라 일컬어지고, 비능률적이며 컨트롤이 잘 안되는 22개 대통령직속위원회 등 각종 자문위원회를 최소한으로 줄여 쏟아져 나오는 로드맵 홍수에 갈팡질팡하면서 비효율성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는 정책혼선을 시정하여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경제운용을 기해야 하리라 믿는다. 또한 민간부문의 부진을 공무원 늘이기 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메꾸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경제에만 국한하여 보더라도 공무원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되어있고 공정한 자유시장경쟁에 의한 시스템 구축이라는 명제를 안고 있다고 볼 때 정원수를 줄이고 작은 정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불어나는 공무원 숫자에 비례하여 관료주의 팽배와 간섭증대의 역작용이 커져 갈 것이기 때문이며, 한번 불어난 숫자는 다시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개혁이라는 이념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각종 위원회의 난립과 큰 정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세부담 증대로 귀착됨으로써 그들의 고통지수만 높일 뿐이다.
또한 재정과 연기금 등 정부부문의 비대화를 초래하는 10조원 규모의 뉴딜정책도 부작용과 낭비를 초래하는 개연성의 측면에서 재검토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넷째, 대다수 국민이 우려하는 정치 정략적 갈등의 해소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입법추진중인 과거사문제라든가 4대 입법 등은 모두 사회갈등을 조성내지 심화시켜 현 집권층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오늘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배퇴, 탄생시켰다.
요즈음 대통령의 발언내용이 전에 비해 많이 유화돼가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보수와 진보, 좌와 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분열, 대립, 갈등은 봉합되어야 한다. 경제성장과 공정분배의 우선 논쟁도 접어야 한다. 최근의 치열한 국제경쟁 양상을 감안하면 그렇게 한가한 때도 환경도 아니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사관은 모순과 대립관계만 극명하게 부각 강조하여 사회주의국가의 계급투쟁의 역사, 그리고 실패의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결했던 것은 이른바 모순으로 인한 대립, 즉 반(反-Anti-these)만 조장하고 이를 아우르는 합(合-Syn-these)을 무시한데 있는 것이다.
21세기 국제화시대에 어찌하여 구태의연한 투쟁만 강조되고 있는가?
오죽하면 대학교수들이 구년을 특징짓는 사자성어를 당동벌이(黨同伐異)로 꼽았겠는가?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겠다고 최근 어느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 정치적 제스츄어로 들리고 편 가르기로 해석되는 어처구니없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작가 「프랑소와 다브레」는 “청년은 노인을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은 청년을 더 바보라고 생각한다. 바보를 보고 싶지 않으면 자기가 늘상 들여다보는 거울을 깨라”고 한 말은 음미해 볼만 하다.
또 「니이치에」는 “가장 용기있는 사람조차 자기가 진짜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용기를 갖지 못한다. …… 모르고 대담하게 행동하고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용기가 아닌 어리석은 자의 우행(愚行)이다”라고 말했고 「알렉산더?포-프」는 “우자(愚者)는 천사도 무서워 못 들어가는 곳으로 돌진해 들어간다”고 했는데 04년의 우리나라 양극화 투쟁 현상을 지칭한 것 같아 씁쓸하다.
최근 보수세력도 반성하면서 개혁성향을 보이고 옳은 혁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과거의 극좌세력도 그 동안의 현실파악을 통한 교훈을 바탕으로 많은 우경화경향을 띠우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 불생한 과거에 발 묶여 실패한 딴 나라의 과오의 전철을 밟을 필요가 있는가? 이 이상 정치적 의도로 서로 헐뜯고 대립각을 세우는 행동이나 정책은 방기되어야 하며 통치자도 애정을 갖고 소망스러운 국정운영의 틀 안에서 온 국민을 똑같이 보듬어 나가야 한다. 모래와 시멘트는 섞으면 단단한 콩크리트가 되지만 서로 분리하면 아무 기능도 못하는 이질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통치자는 솔직하고 명확하게 국민에게 비젼을 제시하고 이 비젼 실현을 위한 방향을 제시, 확고한 지침을 내려주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기대나 희망의 광명이 보이면 흔쾌히 참고 따라온다.
제발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국민을 편 가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후세의 역사는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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