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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토플러’의 관료주의 비판 중에 ‘카멜레판트(Camelephant)’라는 것이 있다. 즉 관료주의는 허다하게 수집되어 쌓이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서류파일에 계통적으로 분류 정리하여 축적하는데 오늘날과 같이 변화무쌍한 정보홍수 시대에서는 이렇게 축적된 많은 정보를 소화해낼 방도가 없고 또 한편으로는 파일에 축적된 정보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이러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그때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실로 새로운 부서를 만들기 때문에 속성상 관료주의는 조직 팽창의 길을 걷는다. 결과적으로 관료조직내의 부처간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타협안이 모색 마련되는 바 이를 관료주의 ‘카멜레판트’로 지칭한다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또는 대책위원회라고 일컬어지는 조직이 바로 코끼리처럼 우둔한 걸음걸이와 낙타의 IQ를 결합한 이도저도 아닌 가장 비능률적 조직으로 출현하고 여기서 의견이 제시되어 설립되는 또 다른 조직이 기형적 양상을 띠게 된다는 풍자적 비판이다.
최근 출자규제의 논란을 보면 공정위가 주장하는 출자규제 이론이 꼭 이 카멜레판트처럼 느껴지니 을씨년스럽다.
출자와 투자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출자규제가 투자를 저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인데 물론 출자제한을 푼다고 바로 기업투자로 전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출자규제가 풀리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조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이치이다. 우리 경제는 일찍이 지금처럼 투자에 목말라본 적이 없었다. 투자가 활성화되면 고용이 늘고 수출, 내수가 자극되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투자촉진을 위해서는 실낱같은 끄나풀이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 우리의 경제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변명과 구실로 규제 쪽으로 몰고 가는 공정위의 모습이 조직존립합리화 주장처럼 느껴져 기이한 느낌까지 든다. (우리의 상식이 못 미치는 깊은 이념상의 딴 목적이 있는 것인가?)
출자규제를 풀어서 대기업이 과거의 예와 같이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에 나서거나 기업위험만을 키우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출자규제로 기업의 신규사업, 구조조정, 기업가치제고 등 생산적 목적을 위한 투자를 막고 중소기업 등 계열협력업체 지원은 물론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방어까지 위협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분위기가 활성화되고 내외여건이 안정되어야 투자도 일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이론인데 이를 막는다는 것은 이 제도가 도입된 당시의 여건과 지금의 여건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여하히 구차한 주장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카멜레판트’적 관료주의 논리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의 시장에서는 부채비율개선, 수익성증대, 주주가치극대화 등을 반영하는 재무구조건전화를 위한 피나는 노력 없이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상장주식의 43%이상 (대기업금융기관의 경우 60%이상)을 외국자본이 점하는 오늘의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IMF 사태이전의 난맥적 지배력 확장을 누가 감히 꾀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오늘의 대기업수장은 모험심 많던 창업1세대에서 경영안전을 강도 높은 교육을 통해 배운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2~3세대로 바뀌어 있다. 이들은 모험하지 않고 정부눈치를 보며 시장의 질서를 신경질적으로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로 하여금 투자를 시키려면 상당한 유발유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란 자생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선두에 서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의 이론’이다.
선견력이 아니라 혁신력이 요구되고 최고의 경영전략은 논리적으로 다듬어져 도입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흐름을 예견하면서 돌다리도 두들겨 조심스레 전진하는 것도 아니며 현재의 질서에 영합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견 무모하게 보이는 모험심의 산물이 기업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이를 정부가 간섭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기업가들이 합리성을 결할 정도의 모험심을 가지고 새로운 계획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저해요인을 제거해줌으로써 진취적 풍토를 조성해주는 것이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정부의 책무요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국민이 소유 지배하는 우수기업들이 숫적으로 늘고 규모도 커져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국부가 축적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구구한 변명과 시대착오적 이념논쟁으로 깨려 해서는 안 된다.
규제폐지가 이루어지더라도 기업을 지도하는 메카니즘과 장치를 정부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기업을 건전성, 도덕성 등 정치이념으로 다루려하거나 경영관리라는 족쇄로 얽어매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것은 ‘P. 드럭커’가 지적하는 제5의 과오, 즉 기업경영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규제폐지는 빠를수록 또 대범하게 이루어질수록 좋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
또한 점차 커져가는 정부는 방향을 틀어 작은 정부로 전환 수렴되어야 한다. 관료조직의 비대화는 간섭이나 규제를 양산할뿐만아니라 온갖 합리화구실로 조직을 키우는 ‘파킨슨’법칙의 폐해를 낳음으로써 ‘카멜레판트’관료주의라는 괴상한 동물을 자꾸 탄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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