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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것을
정진홍   |  2005-11-04 01:19:53  |  조회 2142 인쇄하기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자꾸 눈에 뜨이고 귀에 들립니다. 못마땅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는 한 주일에 하루를 서울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 가서 지냅니다. 오가는 시간이 족히 네 시간을 넘고 보니 그 시간이 지루하여 가끔 잠을 청하기도 하지만 반시간을 넘게 자는 경우는 드뭅니다. 문득 깨어 자연히 밖의 풍경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합니다. 또 그 긴 시간이 아깝고 귀해 조금 눈이 피곤해도 열심히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말일뿐 실제로는 잠도 못자고, 풍경을 즐기지도 못하고, 사색에 빠지지도 못하고, 책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럴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 하는 ‘공상’을 현실인 듯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까닭인즉 시끄럽고 소란하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 아이는 어른 아이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녀는 남녀대로, 어느 누구도 남을 마음 쓰면서 조신하게 자기네 말과 행동을 삼가지 않습니다. 불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마침내 귀마개를 샀습니다. 소리를 아주 막아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높은 파열음은 상당히 걸러주어 여간 다행하지 않습니다.
마땅찮은 것은 이런 것만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이제는 그 ‘싱싱한 친구들’이 귀엽게 보이고, 젊은 남녀가 같이 팔짱을 끼고 걸어도 마치 제가 사제(司祭)라도 된 듯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고 싶어지는데도 그들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참 많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마음에 드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배꼽을 내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삐죽삐죽한 머리 모양, 찢어진 옷, 연신 두드리면서 게임을 하는지 문자를 보내는지 알 수 없는 ‘휴대폰 놀이’ 등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지나는 사람이 있든 없든 괘념치 않고 남녀가 입을 맞추는 일도, 몸을 비비며 서로 껴안고 있는 것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일들은 귀마개로 해결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마음만 편하지 않을 뿐입니다. 마땅찮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십중팔구 귀에다 줄을 꽂고 있어 때로는 무슨 말을 해도 눈이 마주치기 전에는 아예 반응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전철을 타고 어느 대학을 가는데 내리는 역이 어디여야 하는지 분명하지를 않아 마침 앞에 앉아 있는 젊은이한테 내리는 역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자는 것도 아닌데 두 번이나 물은 제 말을 아예 듣지 못한 듯한 표정입니다. 슬그머니 부아가 났습니다. 그런데 보니 귀에 줄을 꽂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귀꽂이를 하고 있으니 옆에 누가 있는지, 누가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에 줄을 꽂고 앉아 세상과 나는 아무 상관없다는 투로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는 그 모습을 그럴 수 있겠다고 여긴 것은 아닙니다. 마땅찮기는 여전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의 어떤 삼매경에 들어 있는 그 모습이 한심스럽기조차 했습니다. 그저 확 줄을 뽑고 “네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몰라도 사람 소리도 좀 듣자!”하고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이 어떤데 내가 감히 이런 ‘불손한’ 생각을 하고 있나 하고 스스로 저를 달랬을 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 자식이 저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조그만 상자를 내주면서 “이것 아주 괜찮은 거에요. 한번 써보세요. 기차를 타실 때나 길을 걸으시면서 이것을 사용하시면 아주 머리가 맑고 편해지실 거에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것으로 가득 채웠으니까 마음껏 즐기세요.” 그것은 뜻밖에도 귀에 꽂는 긴 줄이 달린 음악을 듣는 기계, 엠피쓰리였습니다. “아니, 이걸 귀에 꽂고 다니라고 나한테 주는 거냐? 싫다! 난 그 꼴 안한다. 어서 가지고 가거라!”하고 싶었지만 선물을 한 성의가 고마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받았습니다.
자식이 돌아가고 난 뒤, 혼자 앉아 줄을 귀에 꽂고 스위치를 넣었습니다.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웅장한 교항곡이 울려나오는데 그 소리는 귀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서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음악당의 한 복판에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있었습니다.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기차나 버스나 전철이나 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귀꽂이를 출렁이며 다닙니다. “원 저런 주책없는 늙은이가 있나”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지만 저는 막무가내입니다. 제 즐거움에 빠져 그런 말이 들리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댑니다. “이 좋은 것을 젊은이들이 저희끼리 즐기다니! 못된 놈들 같으니라구!”

제 사는 꼴이 이 모양입니다. <서울대 명예교수,철학, 학술원회원>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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