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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것은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의 공통된 관념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남성 중에서도 군인은 더욱 눈물을 보일 수 없는 것 역시 전 세계의 공통된 문화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퇴역 장군 몇 사람이 한 자리에서 다 울어버린 일이 있었다.
지난 6월 15일, 전 국립국악원장이었고 서울시립대 교수이신 한명희선생의 덕소 자택에서 퇴역장성 몇 분과 학계, 언론계 문화계 인사 20여명이 모여서 한국전쟁 추모공원 건립 추진위원회가 열렸다. 한명희교수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 진 ‘비목’의 작사자이다. 가곡 ‘비목’이 작사된 유래는 한교수가 군복무시절에 강원도 산악지방 비무장지대에서 근무를 했는데, 종전 후 10여년이 지난 다음이었지만 봄에 채소라도 심으려고 땅을 갈면 곳곳에서 해골이 나오는 등, 전쟁의 상처가 너무나 생생했는데, 어느날 엉성하게 비문이 새겨 진 풍화된 나무비석을 발견하고 그 비문의 주인공--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모든 한국청년--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곡을 부친 것이라고 한다.
한교수는 제대 후 한 때 방송국에서 PD로 활동도 했으나 그 후에는 전공을 살려서 서울시립대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방송매체에서 국악의 해설자로 활약했고, 국립국악원장으로 국악진흥을 책임지기도 했다. 군복부 시절에 끊임없이 대면했던 한국동란의 상흔을 일생 잊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이 주거하고 있는 남양주시를 설득해서 시유지 (현재는 그린벨트 지역) 12만평에 한국전쟁기념 추모공원을 건립하는 안이 지난 1월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게하는데 성공했다. 그린벨트 해제허가를 나라로부터 얻고, 공원건립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여론과 힘을 모으기 위한 추진회가 지난 6월 15일 한교수 댁에서 열렸다.
원래 한교수는 젊은 시절에 부양가족은 많은데 서울에 방 두칸짜리 전셋집도 마련할 수 없어서 남양주시 덕소에 땅을 조금 사서 손수 집을 설계해서 인부들과 함께 지어서 이제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덕소 일대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터여서 원래 국립묘지 1순위 후보지였고 (그런데 당시에는 서울에서 교통이 불편해서 내국인 참배객과 외국사절의 방문이 어려운 곳이어서 2순위 후보지였던 동작동으로 결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군사훈련을 하던 곳이고 6.25동란 당시 격전지여서 군사적인 의미도 깊은 땅이라 한국전쟁기념 추모공원을 조성할 장소로 최적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다.
한교수의 희망은 추모공원 안에 (중국을 포함한) 모든 참전국의 기념관을 하나씩 만들고, 보러오는 사람들이 6.25전쟁의 실상을 인식하면서, 그 아들들의 피를 흘려 우리나라를 수호해 주었던 참전우방국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추모공원안에는 평화의 종탑, 전쟁유물 야외전시장, 그리고 공연장도 설치해서 하나의 문화단지로 만들어 국제교류와 우리 국민을 위한 외국문화 현장체험의 장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한교수의 꿈이다.
지난달 15일의 추진회에 모인 사람들은 한교수의 지인들이었는데 예비역장군이며 육사교장, 주영대사, 국무총리, 대한 적십자사회장 등을 역임한 강영훈 전 총리를 비롯해서 예비역장군이며 전 국방장관인 조성태 17대 국회의원, 서경석예비역장군 등 군 관계자와 김후란시인, 최정호교수, 김형국교수, 이애주교수등 학계, 문화계 인사들, 남양주시장등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으로 한교수는 이 자리에서 참석인사들에게 추모공원건립 추진의도를 설명하고 협력을 당부했다.
나는 한명희교수가 여러 해 고려대학에 음악개론 강의를 맡아서 출강했던 관계로, 또 나의 언니가 한교수와 서울대 음대 동창이었던 관계로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의 지인이었는데, 나 자신이 한국전쟁문학에 깊은 관심이 있고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시들을 영역해서 선집을 출판하기도 했기 때문에 추진위원회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기꺼이 응했다. 그리고 발족식이랄 수 있는 소박한 행사에서 내가 영역한 한국전쟁시를 낭송하겠다고 자청을 했다.
발족식을 겸한 행사는 이애주교수의 영가무도(詠歌舞蹈)공연, 전기홍교수의 ‘비목’ 가창, 그리고 나의 조지훈과 박양균 시의 원시와 영역본 낭송, 성우협회장 김종성씨의 홍윤숙시인 작 6.25 전사자 추모시 낭송, 그리고 남양주 시립합창단의 전쟁가요 합창 등으로 진행되었다. 나의 한국전쟁시 낭송은 크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6.25동란에서 장교로 직접 전투에 참여했던 강영훈총리, 월남전에 참전했던 조성태의원, 서경석 예비역장군등은 나중에 격려의 말씀을 부탁 받고는 나의 시 낭송을 듣고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는 말로 말씀을 시작했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강영훈전총리는 요즈음 학생들은 6.25전쟁이 어떤 전쟁이냐고 물으면 연합군들끼리 싸운 전쟁이라고 말을 하는 세상이라서 6.25의 그 처절한 전투, 거기서 희생된 아까운 목숨들이 모두 잊혀진 줄 알았는데 아직 6.25를 기억하고 그 아픔과 의미를 전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도 고맙다고 하면서 흐느꼈다. 시가 군인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발견이다. 우리나라의 굳센 군인들이 모두 이런 아름다운 감성의 소유자이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그 날 읽었던 2편의 시 중에서 박양균님의 짧은 시를 아래에 소개해 본다.
꽃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亡한 이 荒蕪한 戰場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 송이 뉘의 委囑으로 피어났기에 상냥함을 발돋음하여 하늘과 맞섬이뇨. 그 무지한 砲聲과 爆音과 高喊과 마지막 殺戮의 피어 젖어 그렇게 육중한 地軸이 흔들리었거늘 너는 오히려 靜謐 속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랐기에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푸르른 天心에의 길 위에서 한 점 웃음으로 지우려는가---.
나는 이 짧은 시에 우리민족의 역사와 생존의 내력이 모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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