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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영국 보수당의 당수 경선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거물들을 물리치고 1위로 올라선 것이다. 198명의 보수당 소속 의원만으로 치루어진 당수 선출 2차 경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은 90표를 획득하여 62표의 데이비드 데이비스(David Davis, 56세)를 제쳤다. 이른바 “데이비드 대 데이비드(David vs David)"의 경쟁이었다.
원내 경선에서 1,2위를 차지한 이들 두 사람의 경쟁은 오는 11월 4일에 있을 보수당 전당 대회에서 30만 당원의 결선 투표에 의해 판가름 나게 된다. 그 결과는 12월 6일이 되어야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만 여론 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의 지지도는 30%대의 백중세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말 그대로 보수주의의 온상이다. “경험과 경륜”을 지도자의 기본으로 삼아 온 그 보수당에서 30대의 젊은 정치가가 당수가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도 [토리당,Tory Party] 으로 불리는 보수당은 영국 역사 그 자체라 해도 좋다. 17세기 후반에 모습을 드러낸 토리당은 1783-1830년에 소 피트(the Younger Pitt)와 리버풀(Lord Livepool)의 집권으로 정당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 때는 아일랜드 문제로 몰락의 비운을 맞기도 했다. 보수당이라는 당명은 1841년의 선거에서 로버트 필(Robert Peel)이 승리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영국 정치는 토리당보다는 휘그당(Whigs)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 보수당이 오늘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디즈랠리(Benjamin Disraeli)의 개혁 때문이었다. 디즈랠리는 “보수당의 아버지”이자 “영국 영광의 장본인”이었다.
19세기에 보수당은 귀족과 지주의 정당이기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모두를 위한 정당”으로 자기 변신을 감행했다. 1, 2차 대전 중에는 정당 간 연합체제로 “보수당=애국심”의 등식을 국민 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 정계에는 자유당 대신에 노동당이 등장했다. 그 결과 정치를 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는 “계급 정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기간에 보수당에는 처칠(Winston Churchill)과 같은 거인도 있었고, 이든(Anthony Eden)처럼 스웨즈 운하에서 패배한 지도자도 있었다. 영국 보수당은 대처(Margaret Thatcher)에 의해 기사 회생되었다.
대처의 집권은 “영국 병”을 앓고 있었던 영국을 치유했다. 신자유주의의 대처리즘(Thatcherism)은 복지 정책으로 인해 “수치심조차 잃어버린 실업 수당 수혜자”들까지도 시장 원칙에 따라 경쟁의 장터로 나서게 했다. 대처리즘은 “영국은 살렸지만 보수당의 인기는 전락시켰다.” 한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e)는 이 틈새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1997년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로부터 보수당은 3번이나 연속해서 선거에 패배했으며, 지난 8년간 당수가 무려 5번이나 교체될 정도로 혼란에 휩쌓이기도 했다. 그 보수당이 지금 새로운 자기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에 1위로 올라선 데이비드 캐머런은 “변화, 낙관 그리고 희망의 함성”을 구호로 내걸면서 자신의 등장을 강변한다. 그는 “21세기의 정당은 민중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대로 있으면 패배하고, 변하면 승리한다!”는 논리도 그가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1위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가리켜“젊음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비판해도 보수당 당원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보수당 당원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나서야 노동당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 뿐이다. 이들은 보수당 당수로 나선 두 사람의 됨됨이와 정책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젊은 캐머런은 상층 출신으로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에서 수학했다. 그는 졸업 후 보수당 정책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고, 보수당 각료의 보좌관을 거쳐 마가릿 대처 수상과 존 메이저 수상의 연설문 작성 팀에서 일한 적도 있으며, 한 때는 커뮤니케이션 계통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지난 초여름에는 보수당 예비 내각의 교육부 장관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2위의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영국의 와익 대학(Warwick Univ.)을 거쳐 런던 경영대학원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수학했으며, 보수당 당의장으로 일했던 보수당 내의 핵심 정치인으로 당내 우파 세력의 대변자 역을 맡고 있다.
보수당 사람들은 누가 당수로 선출되어도 “변해야만 보수당 집권시대를 다시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그러한 변화는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결단의 리더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두 절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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