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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가디언(Guardian)은 지난 5월 4일 A. G. 프랑크(Andre Gunder Frank)에 대한 추모사를 실었다. “A. G. 프랑크는 4월 23일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76세였다. 그는 전후 사회학과 경제학 등 사회이론 분야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서구 사회의 발전과 풍요는 가난한 비서구 사회를 약탈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서구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이런 현상도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40권 이상의 역저를 남겼으며, 100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했던 종속이론의 거장이었다.”
만일 한국에서 그에 대한 추모사가 발표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덧붙여졌을 것이다. “종속이론은 7, 80년대에 A. G. 프랑크에 의해 한국에서도 보다 쉽게 전파될 수 있었으며, 그의 논리를 통해 자본주의와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바로 보는 시각도 마련될 수 있었다.” 라고.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반전 평화주의 작가였다. 4살 때 나치 치하에서 탈출해 부모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했으며, 1941년에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그의 가족이 처음 머문 곳은 헐리우드였으며, 여기서 그는 학교를 다녔다. 그는 스와스모어(Swarthmore)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50년에 이 대학을 졸업했다. 1957년에는 “소련의 농업문제”로 시카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시카고 대학의 주류 경제학에서 벗어남으로써 지도교수였던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과도 결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효율보다 공평”을 중시했으며, 경제 현상에 작용하는 사회 정치적 요인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를 추모한 도스 산토스(Theotonio dos Santos)는 이때의 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프랑크가 박사 학위를 받은 시카고 대학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에서 사회과학 분야의 주류를 이루었던 구조기능주의의 센터였으며, 80년대에는 이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당시 우리들의 지적 사유를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프랑크가 “시카고 사람들, Chicago boys"과 결별했던 것은 그가 미국 경제학계에서 이단아로 내몰렸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그의 활동 무대는 자연히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유랑은 끝이 없었다. 1957년부터 1962년까지는 미시간 대학, 아이오아 대학, 웨인 주립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 후에는 브라질과 멕시코의 여러 대학을 거쳐 1968년에는 칠레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이때 그는 칠레의 좌파 정권인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관여했다. 그는 그의 동지이면서 첫번째 아내였던 마르타(Marta Fuentes)의 고국인 칠레를 위해, 그리고 아옌데와의 개인적 교분 때문에 칠레에 모든 정열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로 칠레에 피노체트(Pinochet) 정권이 들어서자 그는 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유럽에서 활동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서구 자본주의는 확장과 약탈의 체제인데 그 약탈 대상은 주로 비서구의 저개발 국가이기 때문에 비서구 사회는 빈곤과 갈등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와 비서구의 교역은 비서구의 값싼 원료를 서구가 약탈하는 과정이었으며, 서구의 고가 제품을 비서구에 판매하는 이중 약탈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므로 비서구 사회의 발전 과정은 서구 때문에 “저발전 상태로의 악화”가 이어져 마침내 “저발전의 심화”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종속이론은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 논리였으며, 비서구 민족주의의 한 표현이었다. 그는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불평등한 경제 침탈을 막아야 하고, 민족 경제를 우선적으로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그의 종속이론은 맑스주의와도 연대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비서구인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경제 성장의 기적”이 서구와의 교역을 통해 성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동안 종속이론이 차지해 왔던 지적 기반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급속하게 전개되는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은 종속이론을 더욱 위축시키게 되었다. 결국 그도 종속이론으로부터 세계체제론으로 논점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쓴 [리오리엔트, reOrient]는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 “서구의 시대”로부터 “아시아의 시대”로 옮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자건, jargon”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보다는 꼭 들어야 할 말을 했던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 [리오리엔트]의 한국어 판은 이희재 옮김으로 2003년에 이산에서 출간되었다. 이 가을에 한번 읽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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