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여사, 오늘 아침 신문을 읽으셨을 줄로 압니다.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입이 열리질 않습니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 마시다 만 맥주병, 널브러진 빨랫감, 수북이 싸인 빈 그릇…,
가족들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 지내던 중 숨진 50대 ‘기러기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들이다. 1999년 자녀 2명과 부인을 미국으로 보낸 뒤 유학비를 대며 혼자 생활해 온 장 씨는 숨진 지 5일이 지나서야 시체로 발견되었다. 장 씨는 6년 째 번 돈의 대부분을 딸(21)과 아들(18)의 유학비로 보내고 자신은 40만 원 짜리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자취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또 수년 째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과정에서 최근 부인과의 관계도 악화돼 이혼 문제 등을 놓고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교육계에서는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한국에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가 5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김 여사, 어쩌다가 우리가 사는 곳이 이런 지경으로까지 되었는지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세를 풍미한 시성 괴테는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잘 정리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 결혼이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할 수 있으며,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 온정을 증명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조금 준엄하기는 합니다만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J · 밀턴은 명작 [실락원]에서 부부의 도리를 절묘하게 설파 하였질 않았습니까. <너희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남편과 함께 간다. 너희는 그에게 따르게 되어 있다. 그가 멈추는 곳이 고향이라 생각하라.> 얼핏 들으면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런 사실을 단정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부부는 동행하는 것임이 강조된 글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여사, 우리는 때로 이런 화제를 놓고 핏대를 올린 일은 있었지만 그래도 옛 사람들이 전하는 말씀에 대하여서는 크게 거부하지는 않았질 않았습니까.
아, 문득 생각이 납니다. 지난번에 ‘국적법’인가 뭣인가가 국회를 통과했을 때 한국에서 살면서 우리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무려 1천 7백 여 명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개가 두 살에서 세 살짜리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김 여사는 상기된 얼굴로 소리치시지 않았습니까.
- 그게 모두 예편 네들 짓이지. 우리나라 사내들은 마음이 약해서 그런 짓거린 못해요!
허허허, 사내들 옹졸한 꼴이 보기 싫다면서 혼자 사시는 김 여사이기에 그날 우리는 정말 통쾌하게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스물 한 살짜리 아들과 열여덟 살짜리 딸아이라면 성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른이 다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미국에 가겠다는 발상은 죽은 장 씨 부인의 내주장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강력히 부정하면 자식교육을 소홀히 하는 아버지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서 오므라들고 움츠리는 것이 오늘을 사는 한국의 젊은 아버지들의 딱한 모습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에우리피데스’의 말이 떠오르네요.
- 이 세상에서 못된 여자 이상으로 나쁜 것은 없다. 그리고 착한 여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만큼 훌륭한 일 또한 일찍이 없었다. 남자에게 가장 좋은 재산은 동정심이 많은 아내다.
이런 글을 좋은 글이라고 상찬하면 여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계열로 취급되는 것이 요즘의 세태입니다만, 그래도 사람 살아가는 일에는 지켜야 하는 법도가 있어야 하지를 않겠습니까.
김 여사. 단칸방에서 소주로 지새우는 ‘기러기 아빠’가 5만 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교육계의 발표가 왜 이리 가슴을 저미게 하는지요. 그들 중의 누가 또 소주를 마시다가 죽고, 그 시체가 또 닷새 뒤에 발견된다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곳이랍니까. 모두가 어질지 못한 아내가 말들어낸 참담한 현실을 김 여사는 인정해 주시겠지요.
아내의 의무가 남편을 지배하는 데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이기는 아내를 큰 재앙이라고 한 옛 어른들의 말씀이 더욱 절절해 집니다. 또 뵙겠습니다.<극작가,예술원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