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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와 차베스의 대결은
진덕규   |  2005-11-08 08:48:38  |  조회 2187 인쇄하기
지난 주말 외신은 “중남미 34개국 지도자 회의 실패”에 대해 보도했다.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쁠라따( Mar del Plata)에서 열린 제4차 미주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미주공동시장, FTAA] 문제를 논의했지만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 이를 보도한 미국의 [USA Today]는 “합의 실패를 합의했을 뿐이다!(agreed to disagree)”라는 인상적인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FTAA는 중남미를 자유무역지대로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중남미 지도자들은 그것은 중남미를 미국 경제권속으로 통합시키게 될 것이며, 저임금 노동 시장과 값싼 제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 지대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회의에 참가한 34개국 중 29개국 정상은 이 문제를 2006년까지 계속 논의한다는 단서를 붙인 후 일단 지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5개 국가는 이 문제는 홍콩에서 열릴 WTO 회담 때까지 무조건 보류시키자면서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불타는 마르 델 쁠라따

회담이 열린 마르 델 쁠라따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4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50만의 중소 도시이다. 이곳은 어항이지만 대서양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매년 400여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가 지난 1주일 동안 반미, 반 부시를 부르짖는 시위 군중으로 뒤덮였다. 중남미에서 모인 600여개의 민중 단체는 반미와 반 부시 구호를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거리는 현수막과 선전판으로 채워졌다.
이 시위의 한 복판에는 베네주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직접 반미, 반 부시 시위를 주도했으며, “FTAA 는 라틴 아메리카의 노동자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부시의 음모극”이라면서 “마르 델 쁠라따에다 FTAA의 무덤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부시를 신성한 남아메리카에서 영원히 추방시키자!”면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연창하기도 했다. “민중의 단결로 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보다 나은 생존권을 확보하자!”
시위 군중의 열기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부시를 전범이라고 비난하는 T-셔츠를 입고, 전세 기차로 한 무리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절정을 이루었다.


부시 대 차베스

차베스는 마르 델 쁠라따에서 부시와 직접 대결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신의 위상도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 진보 좌파 지도자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차베스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부터 지금까지 줄곧 “베네주엘라는 부시의 공작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국론마저 분열되었다”면서 미국을 비난해 왔다. 한편, 우파의 공격에 대해서는 그 자신만이 “가난한 민중의 벗”이라면서 민중주의로 맞서왔다.
그러나 부시는 의장대 사열조차 사양하면서 “극도로 공손하게” 그 곳에 갔으며, 아르헨티나 대통령 네스토르 키츠너(Nestor Kirchner)와의 회담에서도 화기에 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부시는 키노트 스피치(keynote speech)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자유 교역과 사적 영역을 강화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심화시켜야만 경제도 번영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

부시와 차베스의 관계는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아직도 중남미 인구 중 무려 9천600여만 명이 하루에 채 $1도 안 되는 극빈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5천8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으며, 1억 4천만 명은 위생 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도 열악한데다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 인구의 10분의 1에 불과한 상층이 국민 총 생산액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 갈등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2004년부터는 경제 성장률이 평균 5%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은 원유 가격이 인상된 결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미 제국주의가 그들에게 빈곤을 가져다 주었다는 주장도 그 만큼 설득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차베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나 부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다수 민중은 FTAA에 의해 그들도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배격하면서 당장의 분노감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 혁명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은 차베스로 하여금 더욱 자신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부시의 제안을 압도하게 만들고 있다. 분명한 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적 상황은 차베스의 편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www.srips.org에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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