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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유럽 프레스 포럼] 전문가 좌담
김영희   |  2005-11-09 02:02:39  |  조회 2305 인쇄하기
"테러와의 전쟁, 미국방식으론 한계"

이라크 안정에 유럽 역할 필요

케리 당선돼도 외교기조는 불변


윌리엄 파프 (파리 주재 미국 칼럼니스트)

다니엘 베르네 (르몽드 국제문제 대기자)

사회=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이 축출됐는데도 테러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 사태는 정상화의 전망이 지극히 어둡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중앙일보 주최 아시아-유럽 프레스 포럼에 참석한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 프랑스의 르몽드 국제문제 대기자 다니엘 베르네와 좌담하고 이라크 사태를 중심으로 국제정세의 흐름을 짚어봤다.[편집자]


▶ 김영희=이라크 사태 정상화의 전망이 안 보입니다. 이번 이라크 사태도 전쟁엔 이기고 평화를 잃는 전형적 사례로 끝나는 겁니까.


▶ 파프=미국의 정책이 잘못돼 있습니다. 이라크 현지는 통제 불능 상태로 악화됐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라크 점령에 대한 현지의 저항이 격렬함에도 미군은 점령 지역을 확대해야 질서가 회복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모순이 있는 셈이죠.


▶ 베르네=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라크전에 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전쟁에서 쉽게 이기기는 했지만 아직 질서를 세우지 못했어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국가 안에 새로운 체제를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두 전쟁을 통해 얻은 이 같은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라크에서 질서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면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 김=이라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이라크는 깊은 내전의 수렁에 빠진다는 비관적인 관측도 없지 않습니다.


▶ 파프=흥미로운 주장이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라크인들 스스로 혼란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라크의 여러 세력은 오랫동안 공존해 온 경험을 갖고 있어요. 결국 살기 위해서는 서로 타협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베르네=미군이 철수한 뒤 이라크인들이 또 다시 독재 치하에서 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철수하면 유럽 동맹국들이 미군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김=유럽, 예컨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미군을 대신하거나 보완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까.


▶ 베르네=1년 또는 1년반 전이었으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더라도 이라크의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 김=이라크 의회를 구성키 위한 총선거가 내년 1월로 예정돼 있지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같은 사람은 총선거가 예정대로 실시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요.


▶ 베르네=TV와 동료들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자유롭고 정상적인 선거가 이뤄지기는 몹시 어려운 듯합니다.


▶ 파프=이라크에서 정상적인 선거를 치르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습니다. 도로 사정도 그렇고, 특히 통신은 큰 문제죠. 심지어 헬리콥터와 지상 간의 통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요.


▶ 김=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신보수파(Neo Conservative) 참모들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먼저 정착시키고 그 민주주의를 중동 전역에 확산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이라크를 침공했어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구상입니까.


▶ 베르네=어떤 면에서 그들의 생각은 단순하고 비현실적입니다. 특정한 철학이나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따라 정책을 수립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게 매력적이고 흥미로울 수도 있죠. 그러나 정치적 현실은 전혀 달라요. 미국 정부의 신보수파는 이런 모순에 대처해야 합니다.


▶ 파프=미국의 신보수파는 지적(知的)으로 좀 문제가 있어요. (웃음) 미국의 여러 싱크탱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론적인 측면에서만 국제문제를 보는 젊은이들을 자주 접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된 사회과학도로서의 훈련은 받지 못했어요. 역사.제도.문화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이라크를 점령할 수 있고, 일본.독일에서 그랬듯 성공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점령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 베르네=네오콘들이 지적으로 모자란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 파프=그들은 똑똑하지만 지적이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 김=대표적인 신보수파로 꼽히는 로버트 케이건은 유럽 국가들이 국제법과 제도에 바탕을 둔 나약한 '칸트(Kant)식 평화'를 추구하는 반면 미국은 힘에 바탕을 둔 강력한 '홉스(Hobbes)식 평화'를 지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설득력 있는 말입니까.


▶ 베르네=그거야말로 단순한 관념입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해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도 국제법과 제도 등을 통해 위력을 발휘하는 유럽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유럽이라고 항상 그런 소프트한 수단에만 의존하는 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발칸 문제 등에서는 유럽도 강력한 방법을 동원했어요.


▶ 파프=구소련의 몰락으로 미국은 적국(敵國)을 잃고 정신적인 공백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세계질서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이란 개념입니다. 미국은 없는 적국을 설정하고 거기서 오는 위험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결국 미국은 세계적인 불안을 조성하고 그 불안에 대한 처방을 내놓고 있는 꼴입니다. 이게 오늘의 국제사회를 파악하는 인식의 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김=옛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축출됐음에도 테러는 끊이지 않습니다.


▶ 베르네=테러에 대응하는 방법은 더욱 다양해지고 고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군사적 수단을 통한 '테러와의 전쟁'에는 한계가 있어요. 테러는 그 방법과 배경이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대처하는 방법과 해결책도 당연히 달라야 합니다.


▶ 파프=테러의 문제는 테러리스트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느냐와 관련이 깊습니다. 그들은 대개 비합리적이고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합니다.


▶ 김=석유를 생산하는 중동 국가에서는 대개 왕실과 일부 상류층이 오일 달러를 독점해 빈부격차가 심각하고 그것이 테러의 온상이 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중동의 정치.사회적 개혁 없이 테러 근절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됩니까.


▶ 파프=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적.물질적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볼 수는 없어요. 지난 50여년간 유럽은 유럽연합을 이뤄냈지만 과거의 부정적인 국제관계가 획기적으로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중동 문제를 단순한 경제문제로 볼 수도 없어요.


▶ 김=개별 국가 차원에서 부유층들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사회적인 의무가 있듯이 국제사회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잘 사는 나라들은 제3세계의 가난한 국가들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 베르네=원칙적으로는 그런데 부유한 국가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무를 다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나라마다 자신들의 빈곤과 계층 간 갈등이 있습니다. 이슬람계 주민들과의 통합 문제가 심각한 독일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국제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도 환상 아닐까요.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뭔가 공통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국제사회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 파프=유엔 평화유지군 같은 방법을 통해 선진국에 기대되는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 김=9.11 테러 다음날 르몽드 편집인 콜롱바니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We are all Americans)'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써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랑스가 반대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도 프랑스인들의 기분은 그렇습니까.


▶ 베르네=그날만 그랬을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콜롱바니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인가 (Are we all Americans?)'라는 책을 썼어요. 9.11 직후엔 미국과 뭉치자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적 견해차가 고개를 들었어요.


▶ 김=부시와 그의 신보수파 참모들의 일방주의와 오만이 세계 도처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통합된 유럽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오만함을 견제할 수 있습니까.


▶ 베르네=유럽이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어렵습니다.


▶ 김=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존 케리가 당선되면 미국 외교정책이 바뀔까요.


▶ 베르네=유럽 내엔 케리가 이기면 미국의 외교정책이 일방주의에서 벗어날 것이란 환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케리가 되더라도 외교정책이 좀 세련될 수는 있어도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 파프=큰 폭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변화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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