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스승 허영 명지대 교수, 제자 정종섭 서울대 법대교수
허영   |  2005-11-09 02:23:44  |  조회 2812 인쇄하기
問 "민주주의 외치면서 자유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答 "타협과 토론없는 다수결은 多數의 독재이죠"


허영(許營·68) 명지대 법학과 초빙교수와 정종섭(鄭宗燮·47) 서울대 법대 교수는 정 교수가 1981년 ‘헌법의 정당성’ 문제를 연구하겠다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교수를 찾아 허 교수가 재직하던 경희대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그 후 허 교수가 연세대로 학교를 옮기자 정 교수도 박사과정은 연세대로 진학해 학위를 받았다. 허 교수는 경희대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의 본대학과 바이로이트대학 교수를 거쳐 경희대, 연세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고시헌법학에 머물러 있던 국내 헌법학을 ‘학문이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첫 세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사법고시에 합격,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초창기 헌법재판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건국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에서 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종섭=저는 유신 시대에 법대를 다니면서 당시 유신(維新) 헌법은 전혀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이 모진 수난을 당하던 시절에 헌법을 공부하셨고 가르쳐야 했지요.

▲허영=72년 3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헌법학을 강의하는데, 회의와 절망과 분노와 좌절의 시기였습니다. 헌법이 국민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헌법적 가치에 따라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모범적인 법국가 독일에서 5년간 헌법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당시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지요. 72년 당시 천주교에서 내던 월간 ‘창조’지에 기고한 글이 검열에 걸려 정보부로부터 심한 곤욕을 겪었던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선생님께서는 당시 유신헌법 정당화에 동원된 독일의 카를 슈미트의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시고 그 대안을 통합이론에서 찾고자 하셨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통합이론도 너무 우향우하면 자유가 억제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점에서는 선생님과 좀 다른 길로 갔습니다만.

▲허=유신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동원된 헌법학자들 중에는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 헌법철학을 신봉한 분도 있었고 법실증주의 헌법철학의 추종자도 있었습니다. 두 이론 다 독재정치 정당화에 악용될 소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헌법학자로서 그 이론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통합이론은 아무리 비틀어서 적용해도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변질될 수는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공감적 가치와 생활감각 내지 시대정신에 따른 사회통합을 헌법의 목표로 설정하는 통합이론에서는 처음부터 ‘장식적 헌법’이나 ‘명목적 헌법’이 발을 붙일 공간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80년대에는 좌파 급진 운동세력에서 카를 슈미트의 민주주의이론, 즉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급진 좌파 진영에서 극우 이론을 혁명 이론으로 둔갑시킨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동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것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는 절망감도 느꼈습니다. 즉 민주주의라는 구호 아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전율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구호로만 난무할 때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었지요.

▲허=기본적으로는 우리 헌법의 기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그리고 법치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비록 다의적인 개념이기는 해도 그 본질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현실은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도 정책 결정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수렴하기보다는 다수당 내지 여당의 정치적인 독선이 우선적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수결 원칙을 민주주의의 본질로 오해하는 것도 민주정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이유의 하나입니다. 국회에서 야당과 절충과 타협을 하기보다 수로 밀어붙이려는 의식이 지배하는 것도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인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형식원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다수결로 하더라도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실현에 역행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타협과 절충을 위한 토론과정을 생략한 채 수로 밀어붙이는 다수결은 다수의 독재의 불과합니다.

▲정=1988년 아시아 최초로 헌법재판소를 도입하고 16년여 동안 엄청난 업적을 쌓은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우리 헌법재판소는 지난 16년 동안 우리 헌법을 규범적인 헌법으로 실현하는 데 매우 큰 공헌을 했습니다. 200개가 넘는 기본권 침해 법률을 위헌결정해서 무효화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우리 헌법재판제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정=탄핵재판이나 수도이전법률에 대한 재판에서 보듯 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항상 법과 정치의 긴장관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지요. 그런데 요즈음 각기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헌법재판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비평은 좋지만 무력화하려는 의도는 불순하다고 봅니다.

▲허=최근 일부 정치세력이나 사회단체가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퍼붓는 저주와 매도는 우리 헌정질서의 뿌리를 흔드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정치 행태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이 나라를 또 통제 없는 독재정치체제로 되돌리겠다는 발상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존립 근거는 바로 국회와 정부, 그리고 법원 등의 위헌적인 권력행사를 막는 데 있습니다. 헌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정=이번 헌법재판을 계기로 ‘관습헌법’이라는 것이 우리 헌법질서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되는 국면을 맞이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법의 구조 속에서 관습헌법의 등장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허=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특별법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불문헌법의 대명사로 통하는 ‘관습헌법’을 핵심적인 논거로 제시한 것은 개념 사용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관습헌법이라는 불문헌법의 개념보다는 성문헌법의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헌법적 관행 내지 헌법관습법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논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헌법재판소도 그런 취지가 아니었는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즉 한 나라의 수도, 국기, 국가, 국어 등은 그 나라 국민 통합의 상징성을 나타내는 헌법적인 비중을 가지는 사항이기 때문에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세계 80여개 국가는 이들 사항을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록 이들 사항을 헌법에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적인 비중을 가지는 헌법적인 관행으로 굳어진 사항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헌법적인 관행으로 확립된 국민 통합의 상징인 우리의 수도이전 문제는 반드시 헌법개정에 준하는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것을 불문헌법인 관습헌법이 아니라 성문헌법을 전제로 한 헌법적 관행 내지 헌법관습법이라고 이해한다면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저는 국회에 범국민적 국가적 차원에서 중립적인 헌법연구위원회를 설치하여 전문가들이 2~3년 정도 자료를 모으고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진정 21세기 한국에 필요한 헌법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갑자기 개헌문제를 띄워 올리거나 대선 쟁점으로 삼아 논의가 왜곡되는 것을 막는 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허=좋은 생각입니다. 헌법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헌법은 가장 강한 효력을 가지는 규범이기 때문에 침해의 유혹도 제일 강하게 받는 규범이기도 합니다. 헌법개정을 지나치게 어렵게 해 놓으면 오히려 헌법이 더 쉽게 침해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헌법 개정의 목적이 아니라도 국회에 헌법전문가로 구성된 헌법평가팀을 두고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상설적으로 헌법적인 차원의 검토와 평가를 하도록 맡김으로써 위헌적인 입법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국회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우리는 반세기 동안 9차례나 헌법을 개정하는 역사를 살아왔습니다만, 헌법이 우리의 삶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며 왜 중요한지를 체화하지 못하고 있지요.

▲허=헌법은 사회통합의 기초가 되는 공감적인 가치를 집약해 놓은 국가의 기본법입니다. 국민이 헌법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일상생활에서 헌법적 가치를 자신의 가치지표로 삼아 실천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212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스승 허영 명지대 교수, 제자..  허영 05-11-09 2812
211 사법부 이대론 안된다  허영 05-11-09 2434
210 국민의 공복임을 잊었는가  허영 05-11-09 2467
209 국민참여 막는 ‘참여정부’  허영 05-11-09 2425
208 [아시아 - 유럽 프레스 포럼] 전문가 좌담  김영희 05-11-09 2305
207 사이비 시민단체 간판내려라  허영 05-11-09 2359
206 국가정체성 의혹 해소하라  허영 05-11-09 2295
205 ‘高非處’ 추진의도 의심스럽다  허영 05-11-09 2292
204 전교조가 짓고 있는 죄  서지문 05-11-09 2189
203 ´아첨술´  진덕규 05-11-07 2519
6162636465666768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