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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에서의 사고
로빈 쿡(Robin Cook)이 급서했다. 그는 영국군의 이라크 참전에 반대하면서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외무장관직을 사임했다. 외신은 그의 사망을 이렇게 전했다. “로빈 쿡은 스코틀랜드 북서부 하일랜드에서 아내인 게이너(Gaynor)와 함께 721m의 밴스택 산정을 등반하던 중 산정에서 쓰러졌다. 그는 헬리콥터로 인근 인버네스의 병원으로 운송되었지만 사망했다.--스코틀랜드 리빙스턴 출신의 하원 의원인 그는 에든버러에 거주했으며, 산책을 즐겼고, 자전거타기와 경마에도 심취했다.”
그는 8월 6일에 사망했는데, 장례식은 지난 12일 에든버러의 세인트 길스(St. Giles)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이 날 장례식에 참석했던 수백 명의 조문객들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의회주의자(the Greatest Parliamentarian)"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보았다.
양식과 신념에 의한 선택
그러나 토니 블레어 수상은 “휴가”를 이유로 들어 장례식에 불참했다. 대신 대장상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을 비롯해 다수의 각료들이 참석했다. 로빈 쿡과 토니 블레어는 지난 번 이라크 파병 문제로 갈라섰는데,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로빈 쿡의 반대는 토니 블레어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로빈 쿡은 2003년 3월 17일 “지난 100여 년간 최고의 명연설”로 평가받은 의회 연설을 통해 자신이 파병에 반대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영국이--그 어떤 국제 기구도 동의하지 않는 전쟁에 참전하려 하는데, 그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토(NATO)도, 유럽 연합(EU)도, 심지어는 유엔 안보리도 이 전쟁에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우리의 국익은 일방적인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자간의 합의 그리고 법에 따르는 국제 질서에 의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적인 파트너십은 약화되어 버렸습니다. 유럽 연합은 분열되었고, 유엔 안보리는 교착되었습니다.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기 전에 국제적 파트너십은 이미 전쟁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후세인의 군대가 위협적이기 때문에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군대가 형편없다는 가정에서 군사 작전을 세우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라크에는 대량 살상 무기가 없을 것입니다.....우리 서방측이 이라크에 군사력을 형성시키기 위해 도왔던 그 군사력을 이제는 해체시키기 위해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주장과 실천의 일치
그는 이 날 연설에서 “저는 내일 밤 이 전쟁에 반대하는 표를 던질 생각입니다.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무거운 마음을 지닌 채 이 정부를 떠나려고 합니다.”라고 끝맺었다. 로빈 쿡이 “영국 의회주의의 거인”으로 또는 “양식과 신념의 지도자로” 평가받는 것은 그의 진솔함 및 주장과 실천의 일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고등학교 과학 교사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광부였다. 그는 에든버러 대학에서 영국 문학을 전공했으며, 한 때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1974년에 의회에 진출한 그는 노동당 좌파로서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이라든가 “새로운 노동당”은 우파 편향적이라면서 완전히 동의하지 않은 채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 왔었다. 그는 의회에서도 명 토론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1980년에는 원내 대변인이 되었고, 1987년에는 예비 내각에도 참여했다. 1997년에는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외무장관이 되었으나 20003년에 사임했다.
그는 두 번 결혼했으며, 첫째 부인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현재의 부인은 그의 비서로 근무했었는데, 그와의 관계로 한때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얼마 전에 그는 기자들에게 “지난 일, 특히 블레어 수상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못 견딜 것 같다. 왜 그를 좀 더 집요하게 설득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라크 전에 불참하도록 끝까지 반대하지 않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화만 날 뿐이다!”
그는 노동당을 위해서도, 특히 영국을 위해서도 토니 블레어 수상의 시대로부터 고든 브라운의 시대로 옮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멋있는 의회주의자이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직책까지도 버릴 수 있었던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양식과 신념을 지닌 옳은 선택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오래 오래 사람들의 기림을 받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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