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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자유확산 '장난' 아니네
김영희   |  2005-10-14 10:21:13  |  조회 2095 인쇄하기
조지 W 부시의 자유확산 의지의 불똥이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먼저 떨어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부시는 연두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에게 스스로의 장래를 결정하는데 더 큰 역할을 허용함으로써 중동지역 리더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민주화 주문이다. 부시는 이집트에도 민주주의의 길을 가라고 촉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의 대표적인 전제군주국가요, 이집트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금까지 안보와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이들 두 나라의 억압정치를 묵인해 왔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부시가(家)와 사업상으로도 이해가 걸린 오랜 친구 사이다. 이집트와 불화하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부시가 취임사에서 자유의 확산을 선언했을 때 냉소주의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러시아.중국.파키스탄 같은 나라의 자유의 억압과 인권탄압을 묵인하는 부시 정부가 세계 민주화의 횃불을 들겠다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부시가 가장 가까운 친구나라에 민주화를 먼저 요구한 것은 취임사에서 밝힌 자유 확산이 '장난'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것은 강력한 메시지다. 부시의 발언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및 이집트의 관계를 긴장시킬 수도 있고, 두 나라의 잠재적인 민주화 세력을 선동.고무할 수도 있다. 폭정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위한 투쟁을 격려한 부시의 취임사와 묶어서 생각하면 부시의 말은 적지 않은 폭발력을 갖는다.

왜 먼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인가. 그것은 부시 정부가 중동을 폭정 종식의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가 시리아에 대해서는 일체의 수식어를 빼고 테러 지원을 중단하고 자유에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부시는 이라크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진 데 크게 고무돼 중동지역 전체의 민주화에 자신을 얻은 것 같다.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부시의 자유의 확산 선언, 그리고 이번 연두교서의 자유와 민주주의 노선의 확인은 뿌리를 같이한다. 부시는 지난해 연두교서에서 이미 중동지역의 폭정이 절망과 분노를 낳고, 그 절망과 분노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의 온상이라고 주장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라이스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우즈베키스탄.러시아.파키스탄에 대한 부시의 태도다. 세 나라 모두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발칸반도로 연결되는 미국의 유라시아 안보벨트 구축에 중요한 연결고리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아프가니스탄 관리에 필수적인 미군기지가 있다. 그래서 미국은 그 나라의 폭정을 못 본 체 했다. 파키스탄의 협조가 없었으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그렇게 간단히 축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다. 부시가 이들 세 나라 지도자를 만날 때는 자유확산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자유와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돼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냉소주의자들은 다시 부시를 위선자라고 공격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짧은 것이 놀랍다. "우리는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북한의 핵 야망을 포기시키겠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종식시켜야 할 폭정에 들어있다. 부시는 자유의 힘이 폭정을 종식하는 최강의 무기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미 보도된 북한 핵물질의 리비아 수출설이 연두교서 발표와 때를 맞춰 다시 흘러나온 것이 우연 같지 않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된 정책은 브레이크가 안 듣는다. 부시는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결정론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으로 역사는 자유와 자유의 창조자(神)가 정한 분명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거기에 부시는 세상을 암흑.흑백.선악으로 구분하는 매너키언(manichaean)이다. 그에게 악은 용서 못할 파괴의 대상이다. 북한은 부시의 북한 언급이 한마디로 끝났다고 방심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대화로 핵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대화로 안 되면 힘을 사용하겠다는 부시의 옵션은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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