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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동이 트는 것을 바라봅니다. 지평선도 아니고 수평선도 아니지만 아파트 숲 뒤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도 여간 ‘장엄’하지를 않습니다. 다행히 새벽잠이 없는데다 남으로 창이 있어 베란다에 앉아 있으면 그런 일출(日出)을 마음껏 ‘감동’할 수 있습니다. 때로 일몰(日沒)을 ‘뭉클’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해돋이를 맞는 경우에 비하면 별로 잦지 않습니다.
박두진의 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해가 ‘어둠을 살라먹고’ 되살아나는 황홀한 신비를 차마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 감동이 가슴 가득히 차고 넘치면 동터오는 하루를 사는 일이 마냥 자신이 있습니다. 구름이 끼어 해를 볼 수 없는 날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녘의 밝음 때문에 해가 솟는다는 사실은 결코 가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마다 해맞이를 하다보면 해는 한번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해가 뜨지 않는 날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이 언짢으실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해야 당연히 뜨는 것인데 굳이 그것을 ‘늘 해맞이를 하다보면 해가 반드시 뜨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다니..... 그럼, 해가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평소에 한번이라도 했단 말인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고!”
그런데 정말이지 매일 해맞이를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음, 오늘도 ‘마침내’ 해가 떴구나!”라든지 “오늘도 ‘여전히’ 해가 뜨는구나!”하는 생각이 말입니다. 잊어도 상관없는 당연한 ‘존재’로 해가 있어 그 현존을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맞아야 할 ‘사건’으로 해의 실존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명하게 ‘일출은 만나야 하는 사건이고, 내 삶은 그 사건과의 만남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늘 그렇듯 새벽에 베란다에 나갔습니다. 서서히 동이 트는 듯 했습니다. 검은 색깔이 가시면서 사물의 윤곽들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황홀한 해돋이가 시작될 것입니다. 바야흐로 저는 동쪽을 향해 예의 감동적인 사건을 만날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붉은 색이 짙은 잿빛에 흘러들려는 찰나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순간 왜 제가 그랬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문득 서쪽을 바라본 것이었는데, 그러니까 문득 동쪽을 등진 것이었는데, 제 시선이 가 닿는 저 먼 끝에 있는 산등성이 위의 아파트들의 머리끝들이 흰빛으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새벽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 밝음은 몸뚱이 아래로 더 길게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아파트의 발은 짙은 잿빛 어둠 속에 빠져 있었지만 그것도 그렇게 느낀 순간뿐, 차츰 흰 벽과 녹색 나무들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어둠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만물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온 것입니다. 밤이 가고, 해가 뜨고, 낮이 시작된 것입니다. 새 삶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게 밝아오는 누리를 바라보면서 저는 꽤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새벽의 ‘바라봄’을 지탱한 것은 처음입니다. 동쪽을 바라볼 때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해가 솟으면, 그야말로 ‘이글이글한’ 태양이 떠오르면, 저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눈이 부셔 제 시선을 해를 향해 더 머물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일출을 하나의 사건으로 확인하는 일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찬란한 햇빛을 응시하는 속에서 내 눈에 드러날 ‘현실’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해를 눈감고 돌아서서 서둘러 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서쪽을 바라보는 새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이 부시지 않았습니다. 사물이, 온 누리가, 스스로 자신의 윤곽을, 자신의 실재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일출의 시각에 동쪽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근원적인 긍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에 서쪽에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제가 걸어 들어가야 할 세상이 또렷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해돋이는 동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사건’이라고 해야 더 바른 서술일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해가 뜰 적에는 서쪽을 바라보십시오. 서서히 밝아오는 현실을 투시하십시오. 그리고 뚜벅뚜벅 당신의 오늘을 내 디디십시오. 해가 뜨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아직 동쪽을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자칫 눈부신 황홀 속에서 당신은 밝아오는 누리를 잊으실 수도 있습니다. 동쪽에의 ‘신앙’이 있으시다면, 이제 해가 솟을 즈음에는 서쪽을 바라보십시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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