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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무바라크의 장기 집권과 민주화 바람
진덕규   |  2005-11-09 05:19:30  |  조회 2594 인쇄하기
"최초의 자유 선거"

지난 수요일 이집트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자유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선거에서는 예측했던 것처럼 현직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판명되자 2000여 명에 이르는 반대파들은 과격한 시위를 벌이면서 카이로 시가를 누볐다. 그들은 이번 선거는 “완전한 협잡”이며, “24년 동안 집권해 온 독재자가 88.6%로 자기 지지표를 조작한 선거”라고 규탄했다. 경찰은 시위 군중들을 호위만 했을 뿐 그들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무바라크의 당선을 축하하는 행렬도 있었다. 그들도 이번 선거가 “완전 자유 선거”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시인했지만 “이집트에서는 완전한 자유 선거가 시기 상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오늘의 이집트 지도자로는 무바라크 이외의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무바라크의 경쟁자들

무바라크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대통령이 암살당한 이후 계속 대통령직을 차지해 왔다. 지난 5월에는 안팎의 압력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자유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부시에게는 “중동 민주화” 대상 국가인 이집트의 정치 개혁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는 올해 77세의 고령이지만 정치적 열정 만큼은 나이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대단하다. 이번 선거에서 그와 맞섰던 후보자들 중 세 사람은 특별히 관심을 끌었다. 한 사람은 야당인 알-가드(al-Ghad)의 누르(Ayman Nour, 41세)인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공정 선거만 실시되었다면 누르는 틀림없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카이로 대학 법학 교수인 누만 구마(Numan Gumaa)이다. 그는 시장 자유주의자이며, 수감된 정치범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주장해 왔다. 그 밖에도 경제학 교수인 오사마 살투트(Osma Shaltut, 67)와 아랍 민족주의자인 와히드 알-우크수리(Wahid ai-Uqsuri, 52) 등 8명의 후보자가 출마했었다.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올해 91세인 아하마드 알-사바히(Ahmad al-Sabahi)였는데, 그는 이집트를 이슬람 전통 국가로 되돌려 놓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부정과 부패는 이슬람과는 무관한 서방의 것이며, 무바라크는 “이슬람을 배신한 인물로 온갖 부정의 온상”이라고 규탄했다.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

이집트는 지난 반 세기 동안 이스라엘과 세 차례나 전쟁을 치렀다. 1948년, 1967년 그리고 1973년에 전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1979년에 이스라엘과 평화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당시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 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이집트는 아랍 연맹으로부터 추방당했고, 사다트 자신은 1981년에 이슬람 과격파에 의해 저격되었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이 무바라크였다. 그는 한층 더 친서방적인 정책을 취했으며, 이스라엘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이슬람 과격파들로부터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더구나 이집트 경제는 침체의 깊은 늪에 빠져 있어서 경제 발전은 고사하고 현상 유지도 어려운 실정이다. 7500만 인구가 개인당 GNI $1,400의 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 특히 실업률의 증대와 높은 물가고 그리고 부패와 부정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무바라크의 정부에 대해 “통제가 아닌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나일 강에 부는 바람

이제 무바라크에게서는 더 이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무바라크 세력은 패거리 집단과도 같다. 그가 후계자로 점 찍어 놓은 둘째 아들 가말(Gamal)과 그 주변 인물들은 세력화하여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사회 유동성이 극도로 차단된 채 특정 이념이나 연고에 따라 통치 집단이 혈성되었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요구는 단지 대결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러한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몰락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막는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오게 될 것이 뻔하다.

지배 세력이 자기 규제를 통해 나일 강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지금까지 무바라크는 그러한 변화의 바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막는 일에만 진력해 왔기 때문에 그와 이집트의 진로는 이미 반 정도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다. “이슬람 세계에서 친서방적인 후진 국가”라는 그 멍에를 이제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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