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금융계를 떠난 지 어언 7년이 되가는데 현역에 있을 때를 돌아보며 가장 후회스러웠던 때가 웃음을 잃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던 시절이다.
은행장이라는 자리에 있고 보니 골치 아픈 일이 많아 웃을 기력도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필자의 경우 IMF 사태를 만나 은행의 몰락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의 절망감과 이 최악의 사태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던 속에서 웃음을 잃은 면이 많았다.
은행자체가 파리 목숨처럼 연명해가고 있는데 고객은 고객대로 망하게 생겼다고 읍소해오지, 이들을 도울 방법은 없지, 어려움에 처한 고객을 왜 안도와주느냐고 힘센 사람들이 압력을 가해오지,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 격으로 어렵지, 이런 가운데 직원들의 사기는 저점부지로 떨어져 전전긍긍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만나는 직원마다 오금을 못 펴고 죽을상으로 있으며 필자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 때 필자라도 억지로 미소를 띠어 보여주며 유머러스한 말 한마디씩이라도 던져주었더라면 직원의 사기도 올라가고 조직 내에 생기가 돌지 않았겠는가 생각하고 깊이 후회하고 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즐길 줄 안다는 것으로 이는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웃고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즐거움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는 대체로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고통스러운 곳이다. 오죽하면 「세익스피어」가 “We came crying hither.(즉 우리 인간은 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했겠는가? “인간이란 너무나 슬퍼서 웃음을 발명해냈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이 생성되었다”고 한 고대「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나 “인간의 유머의 뿌리가 슬픔”이라고 말한 「마크 트웨인」의 말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마크 트웨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유머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에는 슬픔이나 괴로움이 없는 세상은 무미건조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어쨌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동물의 조건 반사적 본능이고 가장 충실한 감정노출이지만 웃을 수 있다면 이는 한 단계 승화한 상위적 감정이요 행동으로서 철학적 의미로 정의된다고 한다.
요즈음 「Fun 경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즉 CEO가 직원을 즐겁게 웃게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사기를 진작시키며 나아가서는 조직의 발전을 기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CEO는 그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지 않으면 안 된다. 「Fun 경영」이란 방법을 때로는 어린애 장난 같은 행위가 요구된다지만 직원 또는 고객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가 깔린 잔잔한 미소가 밑바닥에 깔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일본작가 「하야시 따쓰오」는 그의 “웃음”에 대한 해설속에서 웃음은 생의 약동으로 인간의 전진, 돌파, 해방과 어디서든지 연결되고 생의 충일(充溢)과 생의 에너지의 발산을 기약한다“고 했다.
지난날에 아무리 어려웠더라도 왜 직원들에게 그 흔해빠진 “잔잔한 미소”를 띠어 보이지 못했던가? 그랬더라면 직원들의 고통도 많이 덜어줄 수 있었을테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일에 대한 자신감도 심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날의 금융기관 CEO 들이 제발 엄숙, 근엄한 자세를 과감히 버리고, 직원들에게 많은 미소로 다가가주기를 바란다. 이런 웃음이 확산될 때 긴장해서 접촉해오는 고객에 대해서도 직원들이 미소로 응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고객 또한 미소로 회답하여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처럼 후일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마디 써보았다.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전 외환은행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