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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이후의 고이즈미 :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
진덕규   |  2005-11-09 05:25:43  |  조회 2420 인쇄하기
선거에서의 압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9.11 정치 도박”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하원 의석 480석 중 고이즈미의 자민당이 296석, 자민당과 연대한 공명당이 31석 등 모두 327석으로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고이즈미는 이번 선거에서 “양식 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안정의 기조 속에서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것”이 세계화의 시대 정신임을 강조해 왔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이미 약속했던 바와 같이 2006년 9월에 수상직을 사임할 계획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이번 승리로 그가 추진했던 [우정 민영화 법안]은 재추진될 것이며, 사회 개혁의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선거의 구호가 “개혁을 막지 말라!”였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그에게는 개혁이 최대의 목표가 되고 있다.

전후 최대의 포퓰리스트

고이즈미의 승리는 “새로운 것”을 바라는 국민과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힌 고이즈미의 교감에서 얻어진 결실이다. 국민들에게 변화를 강조하면서 그들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곧 “ 전후 일본 최대의 포퓰리스트”임을 의미한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파격적이지만 정치가로는 규격적”인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정치가들에게는 회색 정장에다 깔끔하게 빗질한 머리 그리고 점잖은 걸음걸이가 기본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만은 예외에 속한다. 항상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과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새 그리고 걸음걸이도 늘 자기 식(?)을 고수한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CD를 사람들에게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미국 배우 톰 크루즈(Tom Cruise)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 약속이나 신뢰 관계에서만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정치가는 그 뜻을 이룩할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며, 그가 숭배하는 인물은 요시다 쇼인(吉村松陰)과 윈스턴 처칠이다. 전자로 부터는 철저한 자기 규제를 후자로부터는 끈질긴 집념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를 현대판 “사무라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질적인 양분 체제"

지난 10여 년간 일본의 경제는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 “일본형 경영”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평생 직장”의 개념도 구조 조정의 필요성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또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에 걸맞는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보통국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지만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양분된 분열 체제”로 달려간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일본은 “이질적인 양분 체제” 때문에 사회적 균열에 직면하고 있다. 거대 기업과 중소 기업, 대도시와 농촌, 부유층과 빈곤층, 게다가 노인 세대와 청소년 사이의 양분 현상은 말 그대로 “이질적인 양분 체제”를 고착시키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 불평등의 사회 구조로 변모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구 1억 2700만, 개인당 GNI $34,000의 초강대국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과제는 이와같이 “이질적인 양분 체제”이다.

획일성을 넘어서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존 제도 중심의 획일적인 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 결속이다.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전통적으로 획일적인 사회였으며, 획일적인 통합으로만 달려 왔다. 안으로는 국민 감정을 고양시키고, 밖으로는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은 국가주의로 치달려 왔다. 그러므로 일본은 헌법 제9조를 개정해서 “군대 보유와 교전권 확보”를 모색하게 되었다.

“당당한 일본을 세계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 일본 국민들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고이즈미 이후의 고이즈미”의 길은 자명해진다. 즉,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지위 확보와 북방 영토 문제 해결, 동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 행사, 북한의 핵무장 금지 등을 그 과제로 여길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이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이후의 고이즈미”는 일본을 19세기적인 국가주의로 끌고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 곁에서는 일본이라는 국가주의의 비히모스(Behemoth)가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다양성에 의한 결속의 가능성을 일본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적대적인 경쟁 관계로부터 우호적인 협력 관계에 의한 공존의 필요성을 확신시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 국가주의의 비히모스로 달려가는 일본의 경고음이 울려퍼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예고음이라는 사실이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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