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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작용
정진홍   |  2005-11-10 01:51:28  |  조회 2500 인쇄하기
저는 아주 젊어서부터 치과에 다녔습니다. 잇몸이 부어 아파 견딜 수 없게 되고,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를 않으면 결국 멀쩡한 이를 뽑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30년이 좀 넘었습니다. 저는 건강진단을 받는 경우, 치과 검사에서는 입도 벌리지 않습니다. 제가 말 한마디만 하면 의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지나가게 합니다.
물론 여기저기 치과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네 치과에도 가보고, 종합병원 치과에도 다녔습니다. 경험이 많다는 분을 찾아 집에서 꽤 먼 곳을 가기도 했고, 외국에서 공부할 때는 그곳이 어쩌면 더 나은 의술을 베풀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별 효험이 없었습니다. 간단한 치료에서 수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치료를 다하는데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이를 뽑곤 했습니다. 진단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몇 십 년을 병원에 드나들게 되니까 의사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전문적인 용어들을 주워들었기 때문에 가끔 제가 치과질환에 대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감탄하는 것은 물론이고 치과 전문의는 아예 놀라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삽화’가 제 치통을 위해 기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낫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균이 들어가서’라는 진단에서부터 ‘신경성’을 거쳐 ‘유전’에 이르는 그 넓은 ‘스펙트럼’을 얼마나 오갔는지요.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제가 터득한 것은 딱 하나입니다. 의사들이야 당연한 것으로 익히 아는 것이겠지만 저는 저 스스로 ‘원인을 모르면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환자가 이쯤 되면 그것이 의사의 다행스러움일지 환자의 절망일지는 잘 저울질이 되질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가 아프면 참 괴롭습니다.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책을 보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이가 아프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면 으레 어떤 ‘정경(情景)’이 나타납니다. 빡빡한 수풀로 무성한 산림을 저 혼자 걸어 들어갑니다. 왜 그 숲 속으로 가야하는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산은 점점 칙칙하고 음습해집니다. 갑자기 들판으로 나온 듯한데, 그런데 그것은 순간일 뿐, 저 아래 깊은 골짜기에 마주칩니다. 이제는 서서히 어둠조차 드리우려 합니다. 저는 빨리 이 숲을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골짜기 맞은 편에 풍화작용으로 부서져가는 치마바위가 나타납니다. 이제는 바람이 붑니다. 제법 심한 비도 내립니다. 조금씩 바위가 부서져 바위답지 않게 푸석거리며 골짜기로 조각나 떨어집니다. 저 바위가 저렇게 무너지면 골짜기가 모두 뒤덮이고 말거라는 두려움이 솟습니다. 초조해집니다. 하지만 제 손으로 저 넓은 바위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자꾸 자꾸 작아지는 저를 느낍니다. 아직도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없는데, 걸음을 걷고 있기는 한데, 저도 모르게 작아진 제 걸음은 기운이 없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제는 부서지는 바위도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잿빛으로, 더 진한 잿빛으로 빠져듭니다.........그러다 깨면 새벽입니다.
요즘은 동갑내기 고향친구가 하는 치과에 다닙니다. 벌써 스무 해 가까이 되었습니다. 치주염이 전공이어서 제게 딱 맞는데다, 꾸준히 외국에 가서 새 의술도 배우고, 학회활동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직 안경도 쓰지 않고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환자를 봅니다. 참 부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친절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그렇게 겸손합니다. 제가 가도 깍듯한 존댓말입니다. “야, 이 친구야. 나한테까지 존댓말을 하면 어떻게 하니? 내가 민망하잖아.”하고 말하면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버릇이 되어 서요!”
몇 주 전에 몹시 불편해서 다시 병원에 갔었습니다. 다행히 순서를 기다리다 조금 늦게 한가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마지막 환자를 보내놓고 그 친구가 제 손을 잡아끌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흔하지 않던 일입니다. 차를 마시며 저는 무척 과묵한 그 친구의 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의 존댓말을 조금도 흩트리지 않고 한 그 이야기의 골자는 이러합니다. 행정수도가 자기 고향에 들어선다는 것, 자기 누대(累代)의 선산이 바로 그 대상지역의 한 복판이라는 것, 그 산소를 모두 파 옮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것, 가슴이 미여지고 터질 듯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그 산소에 절하고, 산소에서 보이는 능선을 바라보며 조상의 모습을 그리면서 꿈을 키웠다는 것, 그런데 자기 자식들은 보상을 받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자식들한테 화만 낼 수도 없다는 것........
그렇게 말하던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습니다. “풍화작용인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지요!”
그 친구도 무척 심한 치통을 앓고 있었습니다.-월간에세이 11월호에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학술원 회원>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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