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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타오르는 불은?
진덕규   |  2005-11-14 05:52:30  |  조회 2415 인쇄하기
프랑스! 우리에게는 자유, 평등, 박애로 각인된 나라이며, 최근에는 똘레랑스라면서 파리의 겉멋까지 소개된 나라이다. 그 프랑스에서 지금 방화와 폭력 사태가 근 보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다. 이미 5000대 이상의 자동차가 불탔거나 부서졌으며, 체포된 사람들도 1300명을 넘어섰다. 관광지인 니스와 마르세이유 등 30여 곳에는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도미니크 드 빌팽(Dominique de Villepin) 총리는 “시위 폭동의 원인은 불법 이민자에게 있다!”면서 모든 책임을 불법 이민자들에게로 돌려 버렸다. 게다가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내무장관은 “이번 소요에 가담한 외국인들은 추방하겠다”고 공언했다. 평등과 박애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지금 무슬림 이민자들을 극단적으로 차별하는 또 다른 세기적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의 나날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0월 25일이었다. 이 날 파리 근교의 한 지하철 역에서 불법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시설물을 돌아보던 내무장관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그 지역의 몇몇 주민들이 항의의 표시로 돌과 병을 집어던졌다. 기분이 상한 그는 이 지역 무슬림 계 불법 이민자들을 “썩어 빠진 쓰레기”들이라면서 비난했다.
그런데 10월 27일에는 파리 외곽의 한 무슬림 빈민촌에 거주하는 10대 소년 자이드 베나(Zyed Benna)와 베나 트라오(Benna Traore)가 경찰의 강제 검문을 피해 변전소 담을 넘다가 감전돼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일로 자극을 받은 이 지역 젊은이들은 근처에 주차돼 있던 15대의 차량을 방화 파괴했다. 10월 29일에는 이들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침묵 시위가 무슬림 거주민 지역에서 행해졌으며, “무의미한 개죽음”이라고 쓴 T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의 항의 시위가 점점 확대되어갔다.
그러나 내무장관은 “더 이상 관용은 없다!”면서 강경 진압으로 일관했다. 이 때 그는 “제로 똘레랑스(Zero Tolerance)"라는 말도 하였다. 11월 3일에는 폭동이 디종 등으로 퍼져나갔으며, 400여대의 자동차가 불에 탔다. 11월 6일에는 확산되는 사태를 우려하여 자크 시락(Jacques Chirac) 대통령이 질서 회복을 호소했지만 그 날 하루만도 무려 1,500대가 넘는 자동차가 방화 파괴되었으며, 400여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연행되었다. 11월 9일 내각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통행 금지를 실시했다. 그러나 무슬림계 젊은이들의 소요는 좀처럼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요의 기본 요인은

이번 소요의 원인은 자명하다. 프랑스가 아랍계의 무슬림 이주민 자녀들에 대한 사회 통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전 인구의 10%에 달하는 약 600만 명의 무슬림 계 주민들이 살고 있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 원조로 “영광의 30년”을 구가했는데, 그 때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의 무슬림 계 이주민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그 뒤 이들은 프랑스에서 계속 영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출생한 그들의 자녀들은 극심한 정체성의 혼돈을 겪어야 했다. 이들 젊은이들은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을 무슬림으로 치부하면서 철저히 외면해 버렸다. 그 결과 이들 젊은이들의 40% 이상이 실직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프랑스의 중요 고위직 중 36,000명의 시장과 577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수천 명의 CEO와 외교관 및 언론인들을 들 수 있지만 그들 중 아랍의 무슬림계 인사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유일하게 들 수 있는 인물은 알제리 출생으로 세계적인 축구 선수 지단(Ziedine Zidane) 뿐이다.

당장 필요한 변화는

프랑스는 최근까지 조용한 변화만을 일구어왔다. 물론 프랑스도 급진적인 혁명을 경험한 일이 있었는데, 1789년, 1830년, 1848년의 혁명이 그것이다. 또한 1870년과 1914년, 1939년에는 전쟁도 치렀으며, 1958년과 1968년에는 대중 봉기도 경험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미국이나 영국이 겪었던 지난 200여년에 비한다면 조용한 변화를 이룩했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프랑스에서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 지금 프랑스의 제5공화국은 창립 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새로운 자기 변혁의 강한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알 수 없는 경쟁심”으로 워싱턴이나 런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인간주의 지성사의 본류로 자처해왔던 그 프랑스도 속으로는 배타적 인종주의만을 견지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프랑스는 지금 프랑스의 제5공화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프랑스의 인간주의를 위해서도 자유, 평등, 박애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도 진정한 의미에서 똘레랑스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다.<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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